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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의 가을야구가 펼쳐지기 직전. 염경엽 넥센 감독은 선수단 미팅 때 선수들에게 물었다. “더그아웃 앞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지?” 하지만 쉽게 대답하는 선수는 없었다. 염 감독은 “꼭 더그아웃 오른쪽 문구를 보라”고 강조하면서 “작년까지는 즐기면서 야구를 했지만 이번에는 앞만 보고 절박한 야구를 해 달라”고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서울 목동야구장 홈팀 3루 더그아웃 출입구 오른쪽에 붙어 있는 문구는 다름 아닌 ‘우리는 할 수 있다!! Yes we can!!!’ 염 감독이 2012년 말 처음 프로 사령탑을 맡았을 때 직접 정한 것이다. 3년 만에 새삼 ‘더그아웃 오른쪽 문구’를 강조한 것은 비록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해보자는 의미였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문구를 지나치면 ‘나의 최고의 적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떨치자’와 ‘오늘 경기에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자’는 문구가 더그아웃에 나란히 붙어 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7일)을 연장 11회 상대(SK) 수비 실책으로 뚫은 넥센은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비록 내줬으나 3차전에 이어 4차전에서도 승기를 잡으면서 극적인 판 뒤집기를 노렸다. 하지만 엷은 투수층과 막판 집중력 부족으로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점수차(7점) 역전 드라마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염 감독은 “모든 게 내 잘못”이라면서 고개만 떨궜다.
2008년부터 목동구장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한 히어로즈는 그동안 우리담배에서 넥센으로 메인 스폰서가 바뀌는 등 부침이 많았다. 팀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둥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 하기도 했다. 하지만 든든한 모기업 없이도 위기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고 3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히어로즈는 대참패의 기억을 목동구장에 묻고 내년 시즌부터 고척스카이돔으로 홈구장을 옮긴다. 비록 마지막 작별의 경기가 진한 아쉬움을 남겼으나 히어로즈가 목동구장에서 일궈온 기적의 8년은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에너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아듀~, 목동구장이다. 그래도 ‘예스 위 캔’의 메시지는 영원하다.
김양희 기자
서울 목동야구장 홈팀 3루 더그아웃 출입구 오른쪽에 붙어 있는 ‘우리는 할 수 있다!! Yes we can!!!’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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