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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위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으려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운동을 위해 병역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그것도 남의 나라를 위해.
모로코의 한 육상 유망주는 생계의 어려움을 겪던 아프리카의 조국을 버리고, 돈을 벌 수 있는 ‘걸프의 나라’ 바레인으로 국적을 옮긴 게 2004년이었다. 한달에 750달러의 월급을 받으며 군복무를 한 그는 이듬해인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에서 자신에게 먹을 것을 준 바레인에 보답하듯 한 대회 최초의 800m·1500m 우승을 일궈냈다.
그래서 제11회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500m 결승(29일)은 바로 라시드 람지(27·바레인)의 대회 2연패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우승자는 2004년 케냐에서 미국으로 국적을 바꾼 버나드 라갓(32)이었다. 라갓은 람지를 2위로 밀어내며 우승해, 1908년 런던올림픽의 멜 셰퍼드 이후 99년 만에 미국에 세계대회 1500m 금메달을 선사했다.
미국의 이런 쾌거도 ‘국적이동’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이번 대회 공식 주관방송사인 가 1500m를 ‘트랙의 격투기’라고 표현했는데, ‘트랙의 국적이동’이라고 해도 좋을 이유는 여자 1500m에서도 이런 예가 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람지와 같은 바레인으로 나라를 바꾼 마리암 유수프 자말(23)은 이날 오전 여자 1500m 예선에서 4분09초47로 38명 중 2위로 결승(9월2일)에 진출해 메달 획득이 유력하다. 자말이 바레인에 오기에 앞서 프랑스와 스위스로 귀화를 추진했다고 하니, ‘스포츠 이민’은 더 이상 새로운 트렌드가 아닌 게 됐다.
한술 더 떠, 람지는 지난 대회에서 우승했던 남자 800m 종목 예선에도 출전해 자신의 시즌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또 하나의 메달 획득에 나섰고, 라갓도 5000m 예선을 통과해 결승에 진출했다.
오사카/권오상 기자 k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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