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논문·저서·번역서 바지런한 ‘팔방미인 인문학자’

등록 2006-12-21 22:05수정 2006-12-21 22:21

주경철 교수
주경철 교수
책들은 전공연구의 부산물이자 수업의 연장
그렇지만 탄탄하고도 쉬운 문체로 써
문화와 일상의 얼개로 풀이한 서양사 새장
“가장 좋은 글쓰기 공부는 서평”…수업도 서평쓰기
한국의 글쟁이들⑮ /서양사 저술 주경철 교수

이른바 교수들로 대표되는 지식인들, 특히 서구의 시각으로 볼 때 인문학에 종사하는 지식인의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전공에서의 연구성과를 꾸준히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중들과 자기가 연구하는 학문을 이어주는 책을 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이 두가지에 이어 한가지가 더 있다면 다른 문화권의 중요한 지식을 번역해 소개하는 일이다. 그 시대 자신이 몸담은 분야 전문가로서 지게 되는 일종의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이 이 세가지 일에 모두 충실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세가지 사항의 필요성에 모두 동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풍토에서는 학자가 논문을 열심히 써야지 대중들과 호흡하는 책을 펴내는 것은 잡스러운 일이라고 폄하는 교수들이 아직도 훨씬 많다. 그래서 대중들이 읽고 싶어해도 읽을만한 인문학책은 잘 나오지 않고 어린 학생들이 인문학의 참맛을 느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이끌어줄만한 길잡이 책은 드물다. 반면 학자들은 거꾸로 인문학의 위기라고 부르짖고 있다.

주경철 교수(46·서울대 서양사학과)는 학자 또는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이 세가지 항목에 가장 충실한 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라 할만한 이다. 곧 이 시대 지식인들 가운데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당연한 책무인 전공 연구에 충실한 동시에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을 꾸준히 쓰고 있고, 주요한 외국 서양사책을 꾸준히 번역해오고 있다.

책에서 역사 분야는 누구나 좋아하는 장르처럼 보이지만 실제 역사 관련 글쟁이라고 선뜻 꼽을 수 있는 국내 필자는 오히려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계가 가장 주목할 필자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주 교수다. 높은 학문적 배경, 탄탄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체계 등 모든 면에서 출판사들이 탐낼 만한 필자라고 할 수 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4년 걸려 6권 완역

저술가로서 주 교수의 데뷔작은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1999)다. 역사란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부담없으면서도 전문가가 썼다는 신뢰성을 지닌 역사에세이풍의 책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책을 주로 읽는 독서가들에게 주경철이란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책은 이보다 2년 앞서 나온 번역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다. 페르낭 브로델이란 역사가를 국내에 제대로 알린 계기가 된 6권짜리 방대한 이 책을 번역하는데 주 교수는 꼬박 4년을 바쳤다.


그러나 일반 독서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책은 역시 <테이레시아스의 역사>(2002)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새로운 시각을 만나게 해주는 교양역사서로 스테디셀러 자리에 오른 이 책은 주 교수의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이어 ‘신데렐라’와 ‘콩쥐팥쥐’처럼 비슷한 구조의 민담이나 설화가 세계 각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들여다보는 책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주 교수의 책 목록을 보면 이런 역사, 문명 교류와 관련한 인문학책들만이 아니라 독특하고 새로운 책들, 그리고 ‘근엄하신’ 인문학자들은 잘 쓰지 않는 책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와 어학능력에 대한 길잡이성 에세이집인 <언어 사중주>을 다른 분야 교수들과 같이 쓰기도 했고, 청소년용 책 <문화로 본 세계사>도 썼다. 네덜란드란 나라에 대한 설명서랄 수 있는 <네덜란드: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은 우리 출판계에서 거의 처음으로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책들을 통해 주 교수는 왕조 중심의 기존 역사서술방식이 아니라 프랑스 아날학파 등이 내세우는 것처럼 문화와 일상으로 보는 역사도 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있다. 일단 독자들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내린다. 특히 <문화로 본 세계사>는 문화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해주는 점에서 신선하며, 내용면에서도 청소년용이 아니라 성인용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서구중심의 시각으로 유럽과 세계를 보는 시각을 교정시켜주는 점도 주 교수의 강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 교수 책의 판매량은 기존 베스트셀러들의 수준에 한참 처져 있는 실정이다. 가장 많이 팔린 책도 2만부에 못미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주 교수의 전공인 ‘서양사’란 분야 자체가 아직 한국 독자들에게는 그리 친숙한 분야가 아닌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출판시장에서 역사서는 고대사나 근대사에만 집중된다. 특히 서양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2만부 가까이 팔린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등의 부수는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주 교수가는 이 서양사 분야에서 ‘독보적이면서 유일한’ 필자인 셈이다.

주 교수가 대중들과 호흡하는 책을 최우선으로 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책의 필요성을 늘 인식하고 있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강한 의무감을 지니고 있다. 해마다 한 두권씩 꾸준히 서양사 관련 책들을 번역해오고 있고, 전공분야 책에 대한 서평을 써달라는 여러 언론매체들의 요구에 가능한 한 응하는 것도 이런 철학의 소산이다. 책과 서평에 대한 질문에 주 교수는 스승 라종일 교수가 역시 다른 학자에 들었다며 자신에게 들려주었다는 “가장 좋은 공부가 바로 서평”이라는 말로 답했다. “서평을 쓰려면 책을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읽고, 생각하고, 써보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공부죠.” 그래서 주 교수는 학교에서도 1학기 동안 6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수업을 진행한다. <유토피아>같은 명저들과 <분노의 포도>같은 문학작품도 포함시켜 학생들에게 서평을 쓰게 한다.

16~18세기 해양 교류사 준비중

비록 아직까지는 판매가 책에 대한 평가 수준에 못 미치지만 주 교수의 책들이 독자들과 전문가 양쪽에서 좋은 평을 듣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펴내는 책들이 모두 그의 전공학문과 별개의 것이 아니며 전공연구의 부산물이자 수업의 연장이란 점이다. 학술적 글과 대중적 글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며, 전문적인 내용이라도 보편적 교훈을 담고 있으면 독자들은 호응한다는 것을 주 교수의 책은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 교수 스스로 인정하듯 ‘주저’라고 할만한 묵직한 대표작은 없다고 봐야 한다. 전공인 서양근대 문명교류사 분야에서 자신을 입증할 책은 아직 없다. 조만간 서울대출판부에서 나올 책이 이제 전공 연구분야의 주저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16~18세기 해양을 통한 경제와 문화의 교류사를 다루는 책인데, 열강-식민지의 체제가 만들어지기 전 세계의 모습을 큰 틀에서 살펴보는 책이라고 한다. 출간 이후에는 이 책에서 다루는 개별 주제들-노예제, 생태 및 환경의 역사-등을 더욱 심화해나갈 계획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주경철이 말하는 내 책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까치 펴냄(1997)

대학원 시절 1년 반에 걸쳐 읽었던 책을 훗날 번역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느낌을 주었던 책이다. 괴로우면서 즐거운 번역 작업이었다. 이제는 거기에서 멀어졌지만 내 작문의 첫 출발이 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산처럼 펴냄(2002)

역사가로서 당시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정말 자유롭게 발언했던 기록들을 모았다. 애초부터 책을 내려고 썼다면 부담스러웠을텐데 그러지 않아서 더 자유롭게 썼던 것 같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사계절 펴냄(2005)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학생들에게 전달했던 내용 가운데 대중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한 책이다. 우리 출판 풍토가 학생용 책이라고 하면 너무 쉽게만 하려고 양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쉽지 않게 쓰려고 했고, 이 정도는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문학과지성사 펴냄(1999)

일종의 데뷔작. 역사에 대한 내 해석을 정리했다. 심오할 필요 없이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고, 이렇게 여러 시각이 존해함으로써 역사란 것이 딱딱한 것이 아니라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