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한겨레>는 올 1월 1일 치 ‘편집국에서’ 칼럼을 통해 단편소설 위주로 되어 있는 한국 문단의 구조를 비판하면서 장편소설 중심으로 판을 다시 짤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가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는 제목의 특집을 마련하고 나섰다. 문단이란 대체로 작품과 평론이 발표되는 장으로서의 문학잡지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움직여 나가는 만큼, <한겨레>의 칼럼은 문학잡지와 그 편집위원들을 겨냥한 성격이 컸다. 그렇기에 국내의 대표적인 문학잡지인 <창작과 비평>의 이번 특집은 문단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번 특집에서 평론가 서영채(한신대 교수)씨와 대담을 나눈 최원식 교수(인하대)는 한국 문학이 아직 ‘창조적 장편의 시대’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전통이 두텁지 않으며 이야기의 규모와 연동된 사회적 두께에 대한 작가들의 이해가 깊지 못하다는 점을 그 까닭으로 들었다. 최 교수는 “장편소설이 근대문학의 챔피언”이자 “그 사회 근대성의 성숙 여부를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의 하나”임에도 가령 한국전쟁을 제대로 다룬 장편조차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문제점으로 들었다.
특집의 좀 더 흥미로운 꼭지는 장편소설에 관한 작가들 자신의 육성이다. 황석영씨는 “장편소설이야말로 한 작가의 역량이 제대로 드러나는 분야이며, 문학의 본령”이라면서 “우리 문학의 위기는 소비자보다 생산자(=작가)측에 책임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요즈음 우리 문학은 서사와 현실을 등한시하면서도 대중에 대하여는 고답적인 ‘겉멋’으로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경험한 바에 의하면 장편소설은 전업작가가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작업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좀 알려졌다 하면 대학 문예창작과에 교수 자리가 나서 들어가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작가는 봉준호 감독을 거명하면서 이즈음의 한국 영화를 상찬하는 한편 한갓 시장의 일회성 소비품으로 전락한 듯한 일본 소설들을 경계하면서 후배 작가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후배 작가인 김연수씨는 작가들로 하여금 장편이 아닌 단편을 쓰도록 만드는 문단의 구조에 책임을 돌렸다. “문예지들이 단편소설을 청탁하니까 소설가들은 단편소설만 쓰는 것”이고, “단편 위주로 형성된 한국 문학의 제도는 문학시장과 문학작품을 유리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로 다시 단편 위주의 제도적 지원책이 마련”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편 위주로 형성된 한국 문학의 제도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작가들이 더 많은 장편소설을 쓰리라고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문학 제도가 작가들에게 장편소설을 요구하면 작가들은 장편소설을 쓰게 돼 있다.”
특집에는 이밖에도 김원일 조정래 이문열 한승원 등 중진들의 근작 장편소설들을 논한 평론가 정호웅(홍익대 교수)씨의 글과, 김영하의 <빛의 제국>과 김연수의 미출간 장편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을 논한 진정석씨의 글도 곁들여졌다. 이 잡지의 편집위원들이 ‘책머리에’에서 쓴 대로 “장편소설의 활기를 되찾는 것이 지금 우리 문학 전반을 위해서 긴요한” 만큼 이번 특집이 “우리 장편문학에 대한 기대와 응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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