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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국문학이 사랑한 질병

등록 2007-03-15 18:47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

생각해 보자. 왜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는 유독 ‘환자’들이 많이 등장하는가. 왜 소설 주인공들은 육체적 결함이 아니면 정신적 장애를 지닌 이들이기 십상인가. 그들은 왜 툭하면 병사하거나 사고로 죽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이재선 서강대 명예교수(국문학)가 쓴 <현대소설의 서사주제학>(문학과지성사)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20세기 한국 현대소설에서 매우 뚜렷한 특성 중 하나를 지적한다면 질병 내지 병리성에 대한 친근성이 증대된 현상이다.” “현대문학은 확실히 어느 때보다도 미학적으로 질병을 사랑하고 있다.”

<현대소설의 서사주제학>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제1부는 ‘현대소설과 질병의 주제학’에 할애되며, 2부에서는 거울·탈출·보복과 같은 모티프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소설을 다룬다. 주제와 모티프를 통해 소설의 서사미학을 탐구하되 특히 질병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것이다.

한국문학이 가장 사랑한(?) 질병으로 결핵을 들 수 있겠다. 지은이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 문학사에서 결핵이 처음 등장한 것은 번안 신소설 <두견성>과 나도향의 장편 <환희>가 나온 1923년이었다. 그러나 선우일의 <두견성>은 일본 소설 <불여귀>를 번안한 작품이어서 본격적인 한국문학 작품으로 꼽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도향이 1922년 11월 21일부터 이듬해 3월 2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환희>는 “번안이 아닌 창작으로써 우리 소설에서 결핵의 서사 효과를 처음으로 거”둔 작품이다. 나도향은 그 자신이 결핵에 걸려 스물다섯의 짧은 생애를 접은 작가. <환희>는 비극적 사랑과 이별을 겪은 여주인공이 결핵에 걸렸다가 결국 자살을 택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교수는 <환희>에서 나도향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결핵에 대해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면서 이를 그의 문학에서 긍정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나도향은 두려운 결핵을 사랑과 미적 양상으로 전이시킨 것이다.”

이태준의 단편 <까마귀>(1936)는 “한국 현대소설에서 병리 애호 미학이 본격적으로 출현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까마귀>는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결핵에 걸려 죽어 가는 과정을 기품 있게 그림으로써 “죽음의 미학화를 지향한다.”

이태준 자신은 결핵과는 무관한 처지였지만, 동시대 문인들인 김유정과 이상, 박용철이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차례로 폐결핵에 희생된다. 이 중 이상은 <공포의 기록> <실화> <봉별기> 등의 소설에서 각혈을 다룬다. 특히 금홍과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봉별기>는 “스물세 살이오­삼월이오-각혈이다”라는 서두에서부터 각혈을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시킨다. “이상 작품에서 각혈이나 결핵은 생의 실존적 위협인 동시에 근대적 삶에 내재하는 소모성의 은유이며 시적 방법론이다.” 반면 김유정의 <만무방>은 같은 결핵(노점)을 다루고는 있지만, 여기서 결핵은 “부자나 지식인 또는 세련된 젊은 여성들에게서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빈민의 질병”으로 그려진다.

박태원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의 주인공 구보 역시 신경쇠약성 두통과 시력 및 청력 이상에 시달리는 ‘환자’로 나온다. 그는 자신이 환자일 뿐만 아니라 경성(서울) 거리를 산보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도 온갖 질병을 확인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봉별기>의 이상과 마찬가지로 구보의 병증 역시 “시대·사회적 병리가 신체적 병증으로 전치된 것”이라 파악한다. 요컨대 질병은 단순한 소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사회적 주제를 환기시키는 핵심적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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