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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성배신화는 ‘나’를 찾아 헤매는 여정

등록 2008-01-18 19:44

〈He-신화로 읽는 남성성〉
〈He-신화로 읽는 남성성〉
장정일의 책 속 이슈/

〈He-신화로 읽는 남성성〉
로버트 A.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동연

로버트 A. 존슨의 〈He-신화로 읽는 남성성〉(동연, 2006)을 즐겁게 읽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성배(聖杯)신화’ 가운데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간주되는 파르시팔을 남성성의 원형으로 여긴다.

본디 성배신화는 이교 제식과 기독교 설화같이 서로 원천이 다른 이야기가 결합되면서 복잡한 계보를 형성한데다가, 무수한 이본과 후속담이 존재한다. 그래서 성배의 의미를 캐는 작업은 중세문학 연구가들의 난제다. 그 가운데서 유명한 것은 T. S. 엘리어트가 그의 장시 〈황무지〉의 주제 및 기본 구조와 주요 상징 체계를 얻어 왔다고 밝혔던 J. 웨스턴의 〈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문학과지성사, 1988)일 것이다. 이 책에서 웨스턴은 이야기(로망스)의 근원은 다름아닌 제식에 빚지고 있다고 밝힌다. 육체적 생명과 영적 비밀을 전수하려는 고대 제식이 먼저 있었고, 후대의 이야기꾼들이 그 제식을 토대로 살을 붙인 게 바로 아더왕류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성배가 무엇이며, 어떻게 전승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워낙 신비롭고 강렬하기에 ‘성배 문학’은 오늘도 되풀이된다.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는 아마도 가장 최근에 알려진 그것의 변형이다. 그런데 읽고서도 독후감을 쓰지 않았던 그 소설은 리처드 레이머·마이클 베이전트·헨리 링컨이 함께 쓴 〈예수는 결혼했었나〉(문학예술사, 1982)의 소설적 번안이다. 세 명의 공저자들은 성배란 바로 예수와 결혼했던 막달라 마리아의 ‘자궁’이며, 예수의 후손에 의해 전승되어 왔다고 말한다. 풍성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 저작은 〈성혈과 성배〉(자음과모음, 2005)라는 제목으로 재간됐다.

그렇다면, 융 계열의 정신분석가이면서 융이 개척한 원형 심리학을 바탕으로 신화를 탐구하는 로버트 A. 존슨은 성배신화를 어떻게 해석할까? 기사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열여섯 살 난 파르시팔은 남성의 원형이다. 남성은 그 나이에 어머니와 집이라는 울타리를 떠나게 될 어떤 비전과 만난다. 하지만 그는 아직 어머니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세상과 자신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질 줄 모르기에 실패한다. 파르시팔이 그랬듯이 사춘기 소년의 시행착오가 정정되는 데는 무려 20여년이나 걸린다. 그러나 전통적인 입사의식이나 스승이 부재한 현대의 청소년들은 ‘나’라는 성배를 찾는 긴 여정을 견디지 못한다.
장정일의 책 속 이슈
장정일의 책 속 이슈
청소년기에 빠져드는 공격적 성향이나 속도와 마약, 무분별한 성애 등은 모두 손에 잡히지 않는 ‘나’의 대체물이며, 그런 목마름을 수많은 광고가 이용한다. 우리나라처럼 부모나 학교가 아예 ‘나’를 만들어 주는 것도 문제다. 그런 공허 끝에 남성은 40세 중반 넘어, 또 한번 사춘기를 맞이하고 추락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보는 것들이다. 영성 수련가이기도 한 지은이는 선불교의 ‘십우도十牛圖’에서 소년이 찾아 다녔던 소나 파르시팔이 찾아다녔던 ‘성배의 성’이나 모두 ‘나’의 전일성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 전일성 속에는 외부를 향해 모험을 떠나는 남성성과 내면의 소리를 경청하는 여성성이 함께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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