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비밀-시경과 초사편’ 펴낸 김근 교수
인터뷰 / ‘한시의 비밀-시경과 초사편’ 펴낸 김근 교수
광활한 중국대륙 다스리기 위해 시를 통한 ‘감성 통치’ 선택
정치적 의도로 시의 열린해석 축소 “시 본연의 ‘흥’ 회복해야” 질문 :다음중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이 뜻하는 바가 아닌 것은? 1) 사랑하는 사람 2) 불교의 절대자 3) 빼앗긴 조국 4) 채팅 상대방 우리나라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면 누구나 맞힐 수 있는 문제다. 시를 처음 접했던 때의 느낌과 문제를 풀고난 다음 시를 다시 읽을 때의 느낌을 비교해보자. 처음에는 각각 50개의 시상을 지녔을 학생 50명이 문제를 푼 뒤에는 좀 더 비슷한 모양으로 뭉뚱그려진 하나의 시상을 갖게 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시를 읽고 생겨난 저마다의 개성적인 감응을 보편적인 해석의 틀에 넣어 널리 유통시키는 일의 뒷배에 권력이 있다면? 시 또는 시적인 수사법이 교육과 소통의 주요 수단인 나라에서 이런 일이 오래전부터 벌어져왔다면?
〈한시의 비밀-시경과 초사편〉(소나무·1만5000원)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중국의 문화 인프라인 한시를 통치자들이 어떻게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는지를 파헤친다. 지은이 김근 교수(서강대 중국문화전공·사진)는 드넓은 땅과 인구, 많은 언어와 종족들이 혼재해 있음에도 중국이 하나의 통일된 체제를 유지해 왔음에 주목했다. “분명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한 어떤 기획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성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었겠지요. 개성의 중요한 양태인 문학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일은 언어를 통제함으로써 시작됐을 것입니다. 중국 문학사에 대한 통찰을 통해 이러한 추측에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김 교수는 중국 언어의 두 가지 특징상 시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한 자 한 자가 독자적으로 소리와 의미를 내는 고립언어이기 때문에 벽돌을 쌓듯이 단어를 이어가면 말을 만들 수는 있지만 해석이 모호해지고 중의적이라는 것. 또한 소리의 높낮이가 있는 성조언어라는 것. 이 두 가지 특징으로 언어 자체가 시적이라는 것이다. “시는 언어학적으로 기표의 놀이입니다. 기표를 갖고 흥을 내는 것이지요. 흥이 있을 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깁니다. 아무리 슬프고 절망적이라도 나를 위로하는 슬픈 노래가 나오면 거기에서 힘을 얻을 수 있고, 전투할 때에도 노래 한마디가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달리게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려고 하지요.” 김 교수는 중국이 일찍부터 시와 노래의 이러한 속성을 알아차리고, 이를 개념화해 통치에 이용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이치가 감성을 길들이고 지배한다는 관념에 따라 시를 기능적으로 발전시킨 시교(詩敎)를 비롯해 과거에서 시를 주요 시험 과목으로 채택한 예를 통해 잘 드러난다. “교통과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부터 광활한 대륙을 다스리려면 실사구시적으로 경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겠지요. 어쩔 수 없이 구체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세계나 조직을 전체적으로 접근하고 파악하는 경영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판단에 의존해 시를 통해 길들이는 법을 택한 겁니다.”
김 교수는 ‘한시 권력화’의 단초를 〈시경〉과 초사에서부터 잡아나간다. 중국의 시가 〈시경〉과 초사를 모체 삼아 발전했기 때문이다. 〈시경〉은 공자가 주나라 초부터 춘추시대 초기까지의 시 3000여편 가운데 300여편을 뽑아 실은 시집으로, 원래는 〈시삼백〉 또는 〈시〉로 불리다가 한나라 때 훈고학을 장려해 오경박사 제도를 두면서 ‘경전’이 돼 〈시경〉이라 부르게 됐다. 초사는 초나라의 굴원이라는 시인이 자신의 생을 무가라는 남방 음악 형식에 녹인 작품이다.
〈시경〉은 권력이 시를 왜곡한 최초의 원형으로 꼽힌다. 시가 지닌 문학적 아름다움과 열린 해석의 가능성은 중국이 봉건군주체제 아래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간언제도에 유용했다. 직설적인 간언으로 대립하는 인상을 주거나 황제의 권위에 손상을 주기보다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쪽을 장려한 것이다. 활짝 열려 있던 시의 가능성은 정치적인 의미와 결합돼 굳어버렸다. 한나라 정권은 이러한 현상을 장려하려고 〈시삼백〉을 〈시경〉으로 경전화하고, 경학(또는 훈고학)이란 학술이 해석권을 장악하도록 정착시켰다. 초사도 마찬가지로 훈고학의 대상이 되었다.
김 교수는 “시가 만들어내는 흥에 따라오는 자기확장 의지와 이를 억제하려는 권력의 대립적 관계 속에서 중국 고전시의 흐름을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시를 지어 감응을 만들어내 개개인의 삶의 확장을 꾀하던 중국의 시인들과 이 힘을 길들여 권력에 접속·연합시키려는 시학(또는 훈고학) 사이의 갈등이 중국 시의 흐름을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03년에 낸 〈욕망하는 천자문〉에서도 통치자의 권력 수단이 된 문화 텍스트의 작동 원리를 파헤친 바 있다. 〈욕망하는 천자문〉은 한자를 배우는 텍스트라고만 여겨진 천자문이 어떻게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봉건적인 체제를 만드는 사상적 기초가 됐는지를 다뤘다.
한시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감성의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사회가 특히 근대를 지나면서 이성과 과학이 만능인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시와 노래가 주는 자기초월적인 의지와 흥을 되살려야 합니다. 이치가 감성 위에 군림해온 중국 문학사를 보면 중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이성주의의 연원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아직 시와 노래에서 삶의 의지를 찾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모든 유흥산업이 부침을 겪어도 노래방은 망하지 않잖아요?”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치적 의도로 시의 열린해석 축소 “시 본연의 ‘흥’ 회복해야” 질문 :다음중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이 뜻하는 바가 아닌 것은? 1) 사랑하는 사람 2) 불교의 절대자 3) 빼앗긴 조국 4) 채팅 상대방 우리나라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면 누구나 맞힐 수 있는 문제다. 시를 처음 접했던 때의 느낌과 문제를 풀고난 다음 시를 다시 읽을 때의 느낌을 비교해보자. 처음에는 각각 50개의 시상을 지녔을 학생 50명이 문제를 푼 뒤에는 좀 더 비슷한 모양으로 뭉뚱그려진 하나의 시상을 갖게 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시를 읽고 생겨난 저마다의 개성적인 감응을 보편적인 해석의 틀에 넣어 널리 유통시키는 일의 뒷배에 권력이 있다면? 시 또는 시적인 수사법이 교육과 소통의 주요 수단인 나라에서 이런 일이 오래전부터 벌어져왔다면?
〈한시의 비밀-시경과 초사편〉(소나무·1만5000원)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중국의 문화 인프라인 한시를 통치자들이 어떻게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는지를 파헤친다. 지은이 김근 교수(서강대 중국문화전공·사진)는 드넓은 땅과 인구, 많은 언어와 종족들이 혼재해 있음에도 중국이 하나의 통일된 체제를 유지해 왔음에 주목했다. “분명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한 어떤 기획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성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었겠지요. 개성의 중요한 양태인 문학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일은 언어를 통제함으로써 시작됐을 것입니다. 중국 문학사에 대한 통찰을 통해 이러한 추측에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김 교수는 중국 언어의 두 가지 특징상 시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한 자 한 자가 독자적으로 소리와 의미를 내는 고립언어이기 때문에 벽돌을 쌓듯이 단어를 이어가면 말을 만들 수는 있지만 해석이 모호해지고 중의적이라는 것. 또한 소리의 높낮이가 있는 성조언어라는 것. 이 두 가지 특징으로 언어 자체가 시적이라는 것이다. “시는 언어학적으로 기표의 놀이입니다. 기표를 갖고 흥을 내는 것이지요. 흥이 있을 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깁니다. 아무리 슬프고 절망적이라도 나를 위로하는 슬픈 노래가 나오면 거기에서 힘을 얻을 수 있고, 전투할 때에도 노래 한마디가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달리게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려고 하지요.” 김 교수는 중국이 일찍부터 시와 노래의 이러한 속성을 알아차리고, 이를 개념화해 통치에 이용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이치가 감성을 길들이고 지배한다는 관념에 따라 시를 기능적으로 발전시킨 시교(詩敎)를 비롯해 과거에서 시를 주요 시험 과목으로 채택한 예를 통해 잘 드러난다. “교통과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부터 광활한 대륙을 다스리려면 실사구시적으로 경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겠지요. 어쩔 수 없이 구체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세계나 조직을 전체적으로 접근하고 파악하는 경영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판단에 의존해 시를 통해 길들이는 법을 택한 겁니다.”
〈한시의 비밀-시경과 초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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