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방송과 인터넷 매체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사건의 드러난 모습뿐만 아니라 배경과 인과관계를 깊고 넓게 따져 여론의 반향을 부르는 탐사보도야말로 신문이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2004년에 언론인 황영식이 쓴 한 글에서 탐사보도의 필요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탐사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2002년이나 2007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수많은 의혹 앞에서 대부분의 언론은 책임을 방기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닉 데이비스의 〈위기의 학교〉(우리교육)는 무려 18개월에 걸쳐 일간지 〈가디언〉에 연재했던 학교현장 보고서를 묶은 책이다. 이 책이야말로 치밀한 취재와 극적인 구성, 메시지의 명징함이 어우러진 탐사보도의 전형이다. 닉 데이비스는 이 기사를 작성한 공로로 2000년 ‘올해의 기자상’과 탐사보도 언론인에게 주는 ‘마사 겔혼 상’을 받았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를 도입해 학교체제를 하나의 거대한 학교시장으로 만들어버린 영국 교육의 실패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중산층 학부모들은 부동산 시장에서의 전문 기술과 강점까지 이용해 학습 동기화가 잘된 자녀들을 교육환경이 좋은 학군으로 데려갔다. 이들이 전학을 갈 때 정부의 지원금도 따라갔다.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학교는 학습 동기화가 낮은 아이들과 부족한 학교 운영비로 더욱 곤란을 겪으며 결국 몰락해갔다. 빈곤층 학생들은 가장 예산이 적은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으며 전체 어린이 중 30%는 빈곤이라는 치명적인 영향 아래 살고 있다.
게다가 학교들은 학교성적 순위표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다루기 힘든 학생들을 퇴학시키는 직접적인 재정유인책까지 썼다. 당연히 부유한 교외 지역에 자리 잡은 성공한 사립학교와 도시빈민가에 자리한 실패한 공립학교들 사이의 불평등은 심화되었으며 재정 부족으로 황폐화되는 학교는 늘어만 갔다. 학생의 성적에 따라 교사에게 성과급을 지급하자 교사들은 애초부터 성적이 나쁠 것 같은 아이를 기피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교사들은 쓰러졌으며 능력 있는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학교를 떠났다. 교육정책을 정치적인 대상으로 삼았을 때 학교가 얼마나 깊은 질곡으로 빠지게 되는지 이 책은 매우 리얼하게 보여준다.
불행히도 실용을 강조하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영국의 실패, 곧 경쟁 최우선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농촌지역과 대도시 낙후지역에 150곳 ‘기숙형 공립고교’ 지정, 전문계 특성화 고교인 ‘마이스터 고교’ 50곳 육성,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율형 사립고’ 100곳 설립 등 특성화 고교 300곳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 교사의 경쟁력과 전문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교원평가’를 입법화함으로써 경쟁을 유도하고 평가결과를 연수·자격 등과 연계할 계획이란다.
이 책을 읽으며 황폐화될 우리 교육현실이 떠올라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교육을 통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박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한때 부처 이름에서 ‘교육’자를 뺀 것처럼 교육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고 제발 천박하고 경박한 교육정책을 스스로 포기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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