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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출판의욕 꺾는 저작권법 개정안

등록 2007-11-30 17:29수정 2007-11-30 19:24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나는 2000년에 21세기 출판의 역사는 “광대한 바다처럼 떠도는 무료정보와의 투쟁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양장본은 100만원이 넘는 고가였지만 한때 시디롬으로 제작해 10만원 내외에 판매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2만5천원의 불법복제본이 떠도는 바람에 종이책과 시디롬 모두 생산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 사전은 지금 한 포털에서 무료로 인기리에 제공되고 있다. 물론 출판사는 적지 않은 사용료를 챙겼지만 새로운 백과사전을 생산할 의욕은 잃고 말았다.

저작권은 출판업이 발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조건이다. 1990년 이후 한국출판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저작권이 비로소 확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저작권 의식은 정말로 한심하다.

요즘 인터넷에서 점차 세를 키우며 매출을 늘려가고 있는 도서요약서비스도 문제다. 표절은 저작재산권만을 침해하지만 이것은 저작재산권뿐 아니라 저작인격권의 동일성유지권까지 침해하는 명백한 범죄다. 일부 책은 이 서비스가 제공되자 책 판매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를 견디지 못한 한 출판사는 한 업체에 자사의 책을 허락 없이 요약 서비스하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 업체의 대표는 “우리가 홍보를 잘 해주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왔다고 한다. 결국 그 출판사는 그 업체를 형사고발해 놓은 상태인데 다른 몇 출판사도 고발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다. 이런 실태가 외국에 알려지면 국제적인 망신을 사게 될 것이다.

저작권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의 인식도 문제다. “한·미 에프티에이(FTA)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일시적 복제권의 인정’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 ‘법정손해배상제도의 도입’ 및 ‘비친고죄 적용대상의 변경’ 등 동 협정의 이행에 필요한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 저작자의 권리 보호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는 한편, 그 밖에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나는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한다는 명목으로 <저작권법 일부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출판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축소하고 데이터베이스 제작자, 온라인서비스제공자, 영상저작물제작자, 저작권위원회 등의 권한은 강화하기가 미안했던지 출판사의 의견은 아예 묻지도 않았다. 또 미국을 비롯한 외국업자의 이익은 어떻게 해서라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반면, 국내 출판업자의 이익은 ‘소외’시키려는 의도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냈다. 출판업계는 수정법안을 보자마자 강력한 항의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전자책의 저작권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한 의원이 입안한 법안이 담고 있는 대로 디지털 도서의 납본을 강제하고 저자가 디지털 이용을 허락한 도서에 한해서 독자가 도서관 안팎에서 몇 푼의 이용료만 내고 무한대로 이용하게 된다면 앞으로 전자책을 만들겠다는 사람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출판사가 책 생산자에게 그야말로 무료정보만 제공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것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생산’이 없는데 ‘소비’가 있을 것인가?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독자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텍스트를 찾을 수 없는 비극적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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