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올해 한국출판계가 남긴 최대 숙제는 앞으로 출판사가 어떻게 이익을 남길 것인가의 문제다.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거의 모든 출판사가 책을 팔아도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에 빠져 들어 많은 출판사의 앞날에 암울한 기운이 감돈다.
출판사들은 당장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팔리는 책을 펴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광고나 홍보 등 전통적 프로모션의 힘이 크게 떨어지고 독자의 욕구 또한 갈수록 잘게 쪼개지고 있어 대형 베스트셀러를 만들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는 단 한 권의 밀리언셀러도 탄생시키지 못했고, 가장 많이 팔린 책은 70만 부대를 기록해서 1990년대 이후 최저의 성적으로 한해를 마감했다.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이 온라인서점의 초기 화면에 책을 띄우는 것이다. 초기 화면에 책을 올리려면 출판사는 온라인서점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어, 출판 관계자들은 납품업자로 전락했다고 신세한탄을 한다. 책의 납품가를 한없이 낮추는 것은 기본이고 배너광고, 검색창 광고도 해야 한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간 제작비보다 한 온라인서점의 초기화면에 노출시키는 마케팅비용이 더 들기도 하지만 ‘그것밖에’ 없다는 식으로 출판사는 죽을 줄 알면서 달려든다.
이 와중에 국내 최대 온라인서점인 예스24는 작년에 비해 상당한 이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예스24는 최근 자사 사이트의 광고비를 50% 정도 인상했는데 그나마도 자리를 얻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제 자신감을 가진 예스24는 내년 봄에 주식상장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신감이 다소 지나쳤을까? 예스24는 연말에 한 영화잡지와 공동기획으로 〈2007 올해의 책〉을 출간했다. 책의 권말에는 ‘2007년, 우리를 강타한 책 61’이 실려 있는데 이 특집에는 “그렇기에 저자와 출판사들이 (각고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 만든 책에 대해) ‘자식 같은 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리라. 그 많은 귀한 자식 가운데 2007년을 빛낸 올해의 책 61권을 소개한다. 독자들의 현명한 독서를 위해 냉정하게 옥석을 가려냈다. 부디 당신의 영혼을 뒤흔들 좋은 책을 만나길 바란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런데 61권의 옥석을 누가 어떤 기준에 따라 골랐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개별 책을 소개하는 글 또한 출판사의 보도자료 수준이라 객관성이 의심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 실린 책들을 모두 출판사로부터 권당 수백만원의 광고비를 받고 게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출판사로부터 광고비를 받고 ‘올해의 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독자를 오도한 것이다. 예스24는 올해 상공회의소가 주관하고 산업자원부가 후원하는 제12회 한국유통대상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겉으로 드러난 판매 결과만 놓고 보면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벌인 무한할인경쟁으로 수많은 오프라인서점이 붕괴하고 출판사(납품업체)에 반강제적인 출혈을 강요해서 얻은, 폐허 위에 홀로 우뚝 선 성과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스24는 자신들만이 아니라 거래처, 나아가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재삼 숙고해주기를 부탁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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