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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88만원 세대’의 선택이 새해 화두

등록 2007-12-14 21:53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김영하의 장편소설 <퀴즈쇼>(문학동네 펴냄)에서 20대 등장인물은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 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라고 절규한다.

그들은 “80년대에 태어나 컬러 텔레비전과 프로야구를 벗삼아 자랐고 풍요의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 때는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2002년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걸 목격했다.”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다양한 교육을 받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되었고 타고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라났다. 이전 세대에 비하자면 거의 ‘슈퍼맨’이라 할 그들이 어이없게도 <88만원 세대>(박권일 외 지음·레디앙 펴냄)로 전락했다. 20대의 95%가 월수입 88만원 미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란다.

그들이 2006년에는 성공을 포기하고 ‘나만의 행복 추구’로 돌아섰다. 또 올해는 ‘현명한 삶’을 살아보려 했다. 영악스러울 정도로 유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일과 개인생활 모두에서 이기적으로 나만의 생활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60만부가 팔린 <시크릿>(론다 번 외 지음·살림BIZ 펴냄)의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나 65만부가 팔린 <이기는 습관>(전옥표 지음·샘앤파커스 펴냄)의 “가는 곳마다 1등 조직으로 만든 명사령관의 전략노트” 같은 ‘핵심’을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취하고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번듯한 일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선 후보들은 너나 없이 일자리 창출에 대단한 노하우를 가진 듯 떠들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의 공고화로 아웃소싱이 일반화된 지금 구조에서 젊은 세대의 노동유연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경 밖의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이민노동자들이 채우는 하층의 일자리를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가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모습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노동유연화의 추세를 하루아침에 되돌려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읽자마자 곧바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이 담긴 책을 찾는 추세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 내년에 개중(개인+대중)은 아마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화두를 집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자기 입장을 확실하게 표출할 줄 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좁혀서 선택하고 그것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단 하나’의 중요성을 깨달아갈 것이다.

생활밀착형 정보로 개인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지식이나 도네이션(기부)과 환경의 가치를 아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은 상종가를 칠 것이며 ‘소울메이트’ 수준의 인간관계 추구로 말미암아 설득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득세할 것이다. 지금 개중은 작고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심정적으로 절실하게 다가오면서 눈에 보이는 구체적 결과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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