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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친절한’ 김원우의 통쾌한 독설

등록 2008-03-21 20:55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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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신문들은 하나같이 철딱서니가 없었다. 하릴없는 떠벌리기·흠집 내기·부추기기·까발리기·자랑삼기·젠체하기·허풍 치기 같은 속물들의 너절한 동어반복증, 부분적 실상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적 진상 앞에 눈을 힘주어 감아 버리는 무능력, 깔끔한 포장술에 겨워 숱한 속사정을 잘라내는 방자한 무성의, 품위는 바라지도 않지만 읽히는 맛도 톱밥을 씹는 것 같은 글 솜씨들 따위만 난무했다.”(김원우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에서)

김원우씨의 소설을 읽는 일은 통쾌하다. 신랄한 풍자와 독설을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그것이 읽는 이 자신을 겨냥한 것일 때에도 통쾌하고 후련한 느낌은 여전하다. 그 무슨 피학취미 때문이 아니라, 정곡을 찔린 데에서 오는 쾌감일 것이다. 오랜만에 그의 새 소설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강출판사 펴냄)을 읽으면서 통쾌한 독설에 다시금 취해 보았다.

사실 김원우씨의 소설을 읽는 일이 결코 문문하지는 않다. 그렇기는커녕 그 누구의 소설보다 까다롭고 버거운 것이 그의 소설이다. 그런 느낌은 우선 그이가 작심하고 부려 쓰는 순우리말 어휘들의 낯선 얼굴에서 온다. 피새(사소한 일에 벌컥 화를 잘 내는 성질), 덜덜이(쾌활하고 개방적인 사람), 생무지(그 일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 게정거리다(불평스럽게 떠들고, 하는 짓도 퉁명스럽다), 습습하다(사내답게 활발하다)와 같은 낱말들은 보통의 독자라면 따로 풀이가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작가 자신은 읽으면서 사전을 뒤적이게 만들지 않는 글이나 책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도 있는데, 다행히 이번 소설에서는 까다로운 낱말들에 대해 각주 형태로 뜻을 풀어 놓았다.

낯선 낱말들과 함께 만연체로 늘어지면서도 전후좌우를 두루 살피는 깐깐한 문장 역시 독서를 힘들게 한다. 독일의 유대인 미학자 아도르노는 쉬운 문장을 경계하고 일부러 난해한 문장을 써 버릇한 것으로 유명한데, 김원우씨 역시 까다로운 문장에 대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소설과 함께, 등단 31년 만에 처음으로 낸 산문집 〈산책자의 눈길〉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 쉬운 문장, 상투적인 문체로는 너무나 막강하고 복잡해진 오늘의 현대성 자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과 그것의 구조화 과정에 대한 해명이 역불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갖고 있지요.”

이렇게 ‘불친절한’ 김원우씨의 소설을 애써 챙겨 읽는 까닭은 앞서도 말했듯 통쾌한 독설을 만나는 재미와 함께, 사태의 저변과 전모를 꿰뚫는 혜안에 있다. 전쟁 통에 월남한 세대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난민 의식’을 부각시킨 소설에서도 그러하지만, 횡보 염상섭에 대한 존경을 거듭 강조하는 논문 및 독서 에세이 형태의 글들과 더불어, 문장과 문단, 문학상 등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산문들에서 사태의 핵심을 찌르는 특유의 날카로운 어법은 여전하다. “먹을 것도 없고 생길 것은 더 없는 파장머리인데도 무슨 이해타산이나 챙긴답시고 떼 지어 설쳐대는 어릿광대들의 일대 경연장에 불과한 우리 문단” “운수소관으로서의 특정인 지명도 높이기, ‘돈이 만사다’라는 한탕주의에의 함몰, 아류의 양산 체제 조성, 자극기아에 부응하는 엽기적 이야기의 난무 따위”를 초래할 뿐인 문학상, 그리고 21세기 벽두 신예 소설가들에게서 보이는 “억지스러운 말맛, 어휘 취사에서 풍기는 교만” 등은 우리 문학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쓴 약’이 아니겠는지.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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