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집 <팔레스타인에서 온 연인> 출판기념회에서의 일이다. 번역자인 송경숙 한국외대 교수가 다르위시 시세계의 바탕을 이루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설명하던 중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기자간담회를 겸한 자리였고, 신문사와 방송사의 숱한 카메라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였다. 송 교수에게 전염된 듯 사회를 보던 소설가 오수연씨 역시 눈물을 글썽였다. 목소리에서도 물기가 묻어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슬픔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공감의 능력, 타인의 울음을 대신 울 수 있는 능력이 두 사람을 공적인 자리에서 울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오수연씨가 며칠 전 메일을 보내왔다. 그가 속한 단체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가 기획한 단행본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가 연초에 나왔노라고 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할 당시부터 주도적으로 기획에 참여했던 오수연씨는 책을 내는 과정에서도 자료 확인에서부터 교정까지 꼼꼼히 챙겨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는 작년 12월 초 팔레스타인에 갔다가 2월 말에 귀국한 터였다. 그런데 와서 보니 홍보가 거의 되지 않아 책이 나왔다는 사실조차 묻혀 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것 아닌가. “전 울고 싶어요.” 메일에서 만난 ‘울음’은 곧바로 지난 가을 그의 커다란 눈에 어렸던 눈물을 떠오르게 했다. 오수연씨가 이렇게 말할 때에는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뒤늦게 배달된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를 읽어 보았다. 자카리아 무함마드와 키파 판니, 바쉬르 샬라쉬 등 시인 세 사람에 소설가 아다니아 쉬블리까지 팔레스타인 문인 네 사람과 신경림ㆍ김정환ㆍ김남일ㆍ전성태ㆍ이영주ㆍ김경주씨 등 한국 문인 22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양쪽 문인들이 편지를 주고받듯 글을 이어 썼고 팔레스타인 사진작가들의 작품사진이 곁들여졌다.
2006년 하반기 광주의 ‘아시아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키파 판니는 “살아남지 못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얼굴을 잊지 않도록” 우산을 쓰지 않고 빗속을 걸어다닌단다. 그에게는 비를 맞는 일이 아직 살아 있음의 감각적인 확인이자 미처 죽지 못했음에 대한 죄책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바쉬르 샬라쉬가 우리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서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팔레스타인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소설가 정도상씨는 팔레스타인 장벽과 한반도의 휴전 장벽이 닮은꼴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사동에서 길을 잃었던 키파 판니의 경험담에 오수연씨는 3년 전 팔레스타인을 ‘만난’ 뒤 자기야말로 조국에서 길을 잃었노라며,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만날 것이라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단체 이름마따나 이 책은 멀게만 느껴졌던 팔레스타인과 한국 사이의 거리를 한껏 가깝게 당겨 놓는다. 문학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남의 울음을 대신 울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 그러니 이제 우리가 오수연씨의 울음을 대신 울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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