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지도자는 괴한에게 목숨을 잃지만
공무원은 벤츠를 몰고 다니는 한국의 70년대를 보는 듯한 캄보디아의 현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자들은 모쪼록 여행으로만 오지말고 눌러 살기를
공무원은 벤츠를 몰고 다니는 한국의 70년대를 보는 듯한 캄보디아의 현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자들은 모쪼록 여행으로만 오지말고 눌러 살기를
캄보디아 프놈펜에 머문 지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짤막한 소감을 밝히자면 처음 얼마간은 하루하루가 데자부의 연속이었다. 데자부가 데자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터넷라인이 깔려 있고 휴대폰처럼 흔한 것이 없으며 최신형의 벤츠와 렉서스 승용차가 도로를 질주하고 있지만 프놈펜은 내 기억 속에 선홍빛으로 남아 있는 70년대의 서울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런 풍경을 목도하고 있다.
프놈펜의 빈민들에게 2006년은 철거의 원년이 되고 있다.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수십년을 살아왔던 터전에서 대책 없이 쫒겨나야 하는 빈민들의 비탄과 한숨에는 70년대 초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대도시에서 빈민들을 군용트럭에 실어 광주대단지의 산등성이 황무지에 내다버리던 그 잔인했던 개발독재의 광풍이 토했던 비린내가 배어 있다. 정권이 주도하는 이른바 개발의 이면에는 자본이 버티고 있다. 수천가구의 빈민들을 밀어낸 바싹강변의 거대한 부지에는 이른바 개발권을 손에 쥔 건설자본들이 높은 담을 두르고 택지를 조성하고 있다. 그들이 그 막대한 이권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치솟는 땅값은 권력과 결탁한 자본과 권력에 기생하는 한 줌 지배계층에게 황금알의 불로소득을 안겨주고 있다. 요지 중의 요지인 츠로이창와 다리 너머의 387헥타르는 말레이시아계 호텔자본인 선웨이에 개발권이 넘어갔으며 그 지역에 거주하던 대개는 농민인 주민들은 속절 없이 삶의 터전에서 쫒겨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빈민 뿐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노동자의 대부분을 이루는 섬유공장의 노동자들은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최저임금 45달러의 저임금에 시달리지만 권력은 외국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급급하다. 노동조합은 감시와 협박, 폭력의 대상이며 파업을 주도한 노동조합 지도자 한 명은 괴한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진범은 오리무중이고 경찰과 법원은 무고한 자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다. 농촌에서는 열 살 전후의 아이들까지 논에서 벼를 베고 있지만 대다수 농민들은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오는 차관과 원조 중에서 본래의 목적에 사용되는 것은 절반의 금액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권력을 이루는 상층에서 하층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지는 질서정연한 부정과 부패는 월급100달러 이하의 공무원이 벤츠를 몰고 다니는 기막힌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만 누구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모든 관청과 공공기관에 부정부패하지 말자는 스티커가 사무실과 화장실에까지 붙어있지만 그건 씁쓸한 역설의 농담일 뿐이다. 권력에 줄을 댄 자본들이 밀수와 탈세에 열을 올리며 미래의 삼성과 현대를 향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 기막힌 현실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은 훈센의 철권통치다. 1996년 쿠데타를 계기로 일인독재의 권력을 장악한 훈센은 이 모든 악의 정점이자 시작이고 귀결이다. 훈센은 어떤 인물인가. 크메르루주의 장교출신이었지만 베트남괴뢰정권 시절의 수상이었다. 1991년의 평화협정에서 베트남의 필사적인 후원으로 협상주체가 되었던 훈센은 크메르루주와 함께 무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다. 1993년의 총선에서 온갖 부정선거를 획책하고도 자신의 인민당이 2당에 머물렀지만 협박과 공갈로 연립정권을 차지한 후 쿠데타로 일인군부독재를 확고히 다진 인물이다. 스스로를 아이언맨으로 부르는 훈센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에게는 가차 없이 잔인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2006년의 캄보디아에서 남한의 70년대와 박정희라는 악몽을 되풀이 경험하고 있다. 만주사관학교 출신의 박정희와 베트남괴뢰정권 출신의 훈센이 지배했고 지배하는 땅에는 빈민과 농민, 노동자가 흘리는 비탄의 피와 신음이 강처럼 흐르며 오직 한 줌의 지배계층만이 호의호식을 누리고 있다. 그곳엔 오직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불의의 광풍이 대다수 민중의 허리를 부러뜨리고 있으며 그들이 흘리는 피와 땀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여 배를 불리는 한 줌의 독재정권과 그들이 비호하는 자본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른바 박정희신도들에게 '그들의 살아있는 신'을 참배하는 여행이라도 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여행에서 그들은 그들의 신이 통치했던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런 모습들을 다시 한 번 목격하게 될 것이다.
퍼붓는 폭우에 허물어진 집터 옆에 천막 한 장을 치고 아이들과 함께 주저앉은 늙은 아낙의 주름진 눈망울. 철거된 집터에 둘러진 은빛 철조망에 배인 아이들의 생채기에 배인 선홍빛의 혈흔. 이유 없이 수십 년을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는 농민들의 힘없이 떨리고 있는 검은 입술. 대여섯 살의 아이들이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고 논에서 벼를 베는 그 참담한 풍경. 줄을 지어 공장 문 속으로 사라지는 십대의 여공들의 이마에 배인 시름과 미싱의 그늘아래 시들어가는 저임금의 젊음. 도심의 만평 부지에 세워진 장성의 호화판 저택의 3미터 담 앞에 보초를 서고 있는 초병의 검은 얼굴. 군인들의 총에 목숨을 잃고도 경찰의 곤봉질에 목숨을 잃고도 푼돈의 보상금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 그 억울한 죽음들이 남긴 핏줄들의 서글픈 얼굴을.
하여, 모쪼록 오게 된다면 여행에 그치지 말고 당신들의 천국에서, 당신들의 신을 숭배하며 그대로 눌러 살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유재현/소설가
유재현/소설가
하여, 모쪼록 오게 된다면 여행에 그치지 말고 당신들의 천국에서, 당신들의 신을 숭배하며 그대로 눌러 살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유재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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