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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설] 젊음의 절정에서 내려온다는 것/안치운

등록 2006-07-27 19:47수정 2006-07-28 15:34

16강 탈락 즈음 내가 뛰고 있는 농구팀도 졌다
젊은 날엔 노래 부르며 농구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지금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노래한다
이제 운동이란 내 존재를 물어가는 여정이 되리라
독일 월드컵 대회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졌다. 그 즈음 내가 뛰고 있던 학교 농구팀도 결승전 진출을 위한 경기에서 졌다. 이럴 때면 어디서나 3점 슛을 잘 넣었던 친구, 빈 곳으로 냅다 뛰어가다 볼을 받아 외곽 슛을 절묘하게 던지는 친구, 볼 배급을 적절하게 해주던 친구가 그립다. 학생들은 선생인 내게 죄송하다고 했고, 나는 학생들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팀은 우승을 했었다. 우승했을 때 같이 뛰었던 이들도 있었는데 올해 우리는 졌다. 상대팀은 우리들보다 잘했다. 어디서 그렇게 훌륭한 농구를 배우고 즐길 수 있었는지 그들은 경기 내내 멋있었다.

내게도 농구를 즐기면서 절정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비록 아마추어 농구이지만 뛰고 던지고 받는 리듬으로 삶에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농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젊은 날에는 노래를 부르며 농구의 즐거움을 만끽했었다. 지금은 눈물 흘리며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젊음의 힘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려갔다. 그렇다, 농구 역시 인생처럼 짧다. 경기장에서 우아했던 것들은 기억 속에 맡겨놓은 것 같다. 이제는 시합만 하면 패배하는 터라 이기고 지는 것에 말 한 마디조차 꺼내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이것이 추락인가? 농구경기에서 고개를 숙인 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젊음의 절정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들이 내게도 왔다. 그 순간들을 피하지 못하고 지켜보아야 할 때가 있었다. 농구의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던 때는 이미 오래 전에 있었다. 지칠 줄 몰랐던 힘의 농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자괴감들이 드는 때가 그 시작이었다. 백코트가 늦어질 때, 리바운드에서 밀려 나뒹굴 때 옆구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공을 잡으려고 높이 뛰어 올랐다가 그냥 빈손으로 내려오면서 느끼는 허수한 무엇. 슛한 공이 수비수의 손에 블로킹을 당해 창피해질 때…. 은퇴. 아니야, 아직은 그래도…. 사실 이 때부터 나는 같이 뛰는 선수들을 눈여겨 볼 수 있게 되었다.

언어 대신 육체를 드러내는 운동선수들은 이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간다는 비극적인 사실들을 투명하게 이겨내려고 애를 쓸 때 보는 이들에게 뜨거운 상징이 된다. 침묵하면서 뛰었던 터라 감각이 예민해진, 그렇게 늙은 선수들은 의지와는 달리 손과 발에서 빠져나가는 공을 탓하지 않는다. 예전과 달리 공을 던지는 감각이 달라지는 것을 그리 원망하지 않는다. 패스할 곳을 찾지 못해 볼을 든 채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느낄 때가 있지만 뛸 수만 있다면 그것에 만족하고 싶어 한다. 농구에서 두 쿼터, 그러니까 축구에서 전반전이라도 뛰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에 만족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러나 허재, 홍명보. 최진철 같은 선수들이 경기장에 서 있는 한, 젊은 후배선수들에게 은퇴라는 단어는 유보된다. 아니 연장된다. 은퇴나 연장을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뛰어야 할 뿐이다. 그이들은 젊은 후배들에게 해바라기와 같은 존재이다. 그이들이 은퇴를 해야 따라 할 수 있을 터이므로.

나는 흩어지지 않고 맑은 그이들의 시선을 좋아한다. 시선과 머리는 가장 가깝다. 그이들도 헤맨 적이 많았다. 갈등하는 날의 패스는 오리무중이 된다. 패스가 간 곳 없고, 드리블하다 머뭇거리고 볼이 발에서 다른 발로 넘어간다. 몸은 볼을 따라가지 못한다. 여기에 아련한 시선이 있다. 시선만이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위로한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이란 것도 있다. 내 시선이 타인의 시선으로 인하여 방향을 바꾸는 순간, 내 얼굴이 더 붉어진다. 어찌할 수 없는 순간들. 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국가대표 축구팀이 16강전에 갈 수 없다는 것을 힘들게 받아들여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 순간 이천수 선수가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낮춘 채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 긴 순간…. 조재진 선수도 패배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없다는 듯이. 나는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먼저 보았고, 흔들리는 몸을 나중에 보았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패배의 아픔이 모든 이들의 가슴에 붉은 영산홍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을…. “인제 알겠다. 뭘 아는 데는 참으로 세월이 필요하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말…”(정현종의 시 <잃어야 얻는다>에서)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아무튼 나는 동네 농구시합에서 졌고 국가대표팀도 졌다. 이제 어떻게 하면 운동을 오래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해야 할 것 같다. 말을 만들면 운동의 실존이다. 실존이란 운동하는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 운동했다는 과거가 공격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 열병을 앓는다. 이제부터는 운동을 통하여 내 존재를 다른 이들과 같이 고민하고 싶다. 운동의 실존이란 타인과 더불어 하는 즐거움이며 동시에 운동으로 고독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운동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고민하는 자기반성이다. 그러므로 내게 운동은 스스로를 묻고 걸어가는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과 같다. 젊은 날부터 이어져서, 언제일지도 모르는 그날까지 갈등하는 의식이다.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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