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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설] 종은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린다/유재현

등록 2006-08-10 16:01수정 2006-08-11 14:15

쿠바에 ‘더 나은 체제’를 만들겠다는 미국
어떤 체제가 현 쿠바 체제보다 우월한가?
유일한 이 체제를 지킬 책임은 일류에게 있다
파시즘 대항해 스페인으로 떠났던 헤밍웨이처럼
1953년 7월26일 카리브해의 한 섬나라인 쿠바에서 무장한 일단의 혁명가들이 제2의 도시인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친미독재정권의 병영을 습격했다. 총을 들고 병영을 습격한 자들은 스페인에 뒤를 이은 반세기의 식민지 역사를 끝장내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 포로들 중 절반이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후에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형식적인 재판을 받았다. 이 재판에서 몬까다 병영습격을 주도했던 지도자 중 한 명이 후일 쿠바현대사에 각인된 '역사가 나를 사면할 것이다'라는 유명한 자기변론을 남겼다. 그가 30대의 젊은 피델 카스트로였다. 3년 뒤 풀려나 멕시코로 망명한 카스트로는 동료들과 함께 7.26 몬까다 병영습격을 7.26운동(M26-7)으로 발전시켰고 종국엔 1959년 쿠바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7.26운동이 53주년을 맞았다. 80의 노구를 이끌고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독립전쟁의 기념비적 도시이기도 한 남동부의 바야모에서 열린 기념식을 찾았다. 멕시코로 망명했던 카스트로가 체게바라를 포함한 82명의 전사들과 함께 요트 그란마를 타고 상륙해 적에게 쫓기며 고작 12명이 살아남아 도착해 게릴라 투쟁을 시작한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마주보는 도시였다. 그는 또 그란마가 상륙했던 남동부 연안을 돌아보기도 했다. 아마도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혁명이 시작하고 움텄던 지역을 찾아볼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바나로 돌아온 직후 피델 카스트로는 쓰러졌고 수술대 위에 오르기 전 자신이 어깨에 짊어졌던 책무를 라울 카스트로에게 이양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는 쿠바의 한 시대를 지탱했던 버팀목 하나가 가파르게 쓰러지고 있는 장면을 눈앞에 두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 후 전 생애를 맞서 싸워왔던 플로리다 해협 건너의 미국은 반세기 동안의 우환이었던 카스트로의 마지막을 앞두고 설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지 부시는 “쿠바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이 있다”는 말로 미국의 준비된 기대를 대변했다. 부시가 언급한 계획이란 2003년 카스트로의 사후를 대비해 조직했던 이른바 ‘자유쿠바 지원을 위한 미국위원회(USAFC)’등의 활동을 극대화하고 마이애미의 반카스트로 세력을 내세워 쿠바의 사회주의정권을 전복하려는 음모로 1962년의 피그스만 침공계획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미국이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델 카스트로의 예정된 퇴장은 쿠바에게 혁명 이후 최대의 위기가 될 것이다. 그 위기의 끝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지만 쿠바체제의 붕괴를 목표로 한 부시의 '더 나은 체제'와의 대결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부시의 '더 나은 체제'란 어떤 체제인가. 부시의 그 체제란 오늘날 이 세계에서 오직 쿠바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역이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체제이다. 부시의 체제란 수억의 농민과 노동자가 도탄에 빠져 있는 졸부들의 천국인 중국의 시장사회주의 체제이거나, 힘없고 약한 자들은 모두 배부른 자들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미국이 '자유쿠바'란 미명 아래 쿠바에 선물하고자 하는 자유란 어떤 자유인가. 그 자유는 미국의 식민지시대가 쿠바에 깃들기 전 미국인들이 만들었던 칵테일인 쿠바리브레(Cuba Libre)의 자유이며 오늘날 이라크인들이 누리고 있는 처참한 역설의 자유이다. 그 야만의 체제와 노예의 자유를 거부할 쿠바가 치러야 할 대가가 두렵다. 그건 제2의 피그스만 침공이거나 오늘 레바논과 이라크의 아이들을 화염 속의 바비큐로 만드는 전투기의 폭격일지도 모른다.

부시에게 묻지만, 오늘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체제가 쿠바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체제보다 우월한가. 어떤 체제가 아이들에게 학교의 문을 열어놓고 아픈 자들에게 병원의 문을 열어놓으며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체제인가. 어떤 체제가 자연과 인간을 공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가. 답은 인간의 피와 고통, 신음으로 초침을 움직이는 부시의 체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인간의 걸음으로 걷고 있는 쿠바의 체제이다. 그 체제는 몰락한 인류의 꿈이 다시 영감을 얻고 힘을 얻어 새롭게 싹틀 수 있는 근거이다. 관념이 아닌 현실을 거름삼아 반성하고 실험하며 야만의 체제에 맞서 인간의 체제를 건설할 수 있는 보루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유재현/소설가
유재현/소설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가장 인간적인 체제가 예정된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쿠바인들은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의 체제를 지킬 것이다. 그 책무가 쿠바인들만의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이 체제를 지켜야 할 책임은 인류에게 있다. 오늘 나는 쿠바에 남아 있는 헤밍웨이의 흔적을 떠올린다. 두 번의 쿠바여행에서 단 한 곳도 들르지 않았지만, 내가 헤밍웨이를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나는 오늘 체게바라가 아니라 헤밍웨이를 떠올린다. 스페인내전에서 파시즘에 대항해 총을 들고 스페인으로 향했던 전 세계의 양심적 인간들과 함께 어깨를 걸었던 그 헤밍웨이를. 언제나처럼, 누구에게도 울리는 종소리에 귀를 막을 권리는 없다. 종은 우리를 위해 울린다.

유재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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