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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설] 카이로에서 이집트를 찾아 헤맸네/안치운

등록 2006-09-28 18:33

소음과 매연, 쓰레기 넘치는 무질서한 카이로 거리
‘문명의 근원 이집트’는 어디 있단 말인가
베두인족 출신 자칭 ‘강한 남자’와 밥먹은 뒤에야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이집트를 발견했다
지난 주 이집트 문화부 초청으로, 제 18회, 2006년 카이로 국제 실험극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보이는 것 모두가 문명의 기원인 이집트, 이집트로 가는 길은 근원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은 어두웠고, 날은 뜨거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카이로는 희뿌연 먼지 색깔로 어두운 편이었다. 공항에서 카이로 중심까지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하메드 알리 모스케가 있는 시다델을 지나가자 죽은 이들의 거주지인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도시 한 구역 전체가 공동묘지인 셈이다. 그 안에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과 함께 살고, 죽은 이들이 그들 곁에 누워있다. 어린이들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않고 놀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이집트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별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인다. 나는 돌로 된 무덤 곁에서 뛰어놀고, 살고 있는 이집트 아이들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카이로 시내에는 우리나라가 내다판 중고차들이 즐비했다. 성한 데가 없는 차들이 매연을 내뿜으며 도시를 질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차를 무시했고, 차들은 주행선을 무시했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은 길 한가운데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길에는 걷는 이들을 위한 신호등도 없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이런 모습에 나는 경악했다. 자동차 연료값이 싼 탓도 있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이들을 보기 힘들었다. 차에서 내리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공기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들은 서로 삿대질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면서 차들 사이를 비집고 길을 건너간다. 차들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로 인해 도시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호텔 창문을 열면 그 소리들이 방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카이로는 소음과 매연으로 넘쳐났다. 처음에는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것도 떠올릴 수 없었고, 이곳이 고대 이집트 문명지라는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곁에 나일 강이 흐르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호텔은 일류였지만, 그 바깥에는 가난한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집트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내게 비추어진 오늘날 아프리카 모습이었다. 카이로 도시 건물들은 오래된, 매우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지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낡고 지저분했다. 주거 건물 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길가에는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살균된 세상에 살았던 탓으로 이런 것들만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카이로 국제 실험극 페스티벌의 취지는 아랍 연극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이고, 세상의 눈으로 아랍 연극을 읽어내는 일이다. 그것은 연극이라는 창조적 행위가 인류의 보편적인 표현이라는 믿음 덕분에 가능한 것이리라. 카이로라는 도시가 지니는 불안정성, 테러와 같은 위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눈에 이곳 연극은 닫혀있다. 극장이 극장다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연극을 보러 극장에 오기 힘들다. 실제로 극장에 온 이집트 사람들 가운데 진정한 관객은 드물었다. 나는 아침과 오후에는 주제별 심포지엄에 참석했고, 저녁에는 밤늦게까지 여러 나라에서 온 극단의 공연을 보았다. 카이로에 있는 여러 극장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극장들은 주로 영국 식민지 때 세워진 것들로 보였다. 극장의 건축 양식은 모던했고, 크기도 웅대했다. 우리와 같은 소극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극장은 이들에게 공공건물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집트 연극인을 더 많이 만나고 싶었고, 내가 모르는 아랍 연극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외국에서 초청받아 온 우리들은 호텔과 심포지엄 장소 그리고 극장을 오고갔고, 운전하는 이들은 우리들을 유적지나 오래된 시장과 같은 장소에 꼭꼭 데려다주었다. 아무튼 이집트 정부가 큰 예산을 연극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시민 관객이 많지 않았던 것은 가난 때문일 것이다. 삶의 빈한함에 비해서 극장은 너무나 컸다. 이집트의 공공기관 건물들은 시민들을 압도할 만큼 크다. 극장도 그 예외가 아닐 듯싶다.

카이로에서 숨쉬며 산 지 열흘이 넘을 무렵, 나는 운전을 해주던 세압과 처음으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을 ‘아이 앰 스토롱 맨’이라고 말했다. 나는 무엇에 강하냐고 되물었다. 그는 간략하게 덧붙였다.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하나는 이집트 사람이라 강하고, 다른 하나는 사막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강하다고 했다. 그는 베두인 족 출신인데(베두란 단어는 사막에 사는 이들을 뜻하는 아랍어), 자신들은 그림자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아름다운 말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집트에 와서 카이로에만 머물 뿐, 그 바깥을 나가보지 못했다. 사막을 걸어가 보지 못했고, 나일 강을 따라 흘러가 보지도 않았다. 강하고 아름다운 이집트는 그곳에 더 많이, 더 온전하게 있을 것이다. 카이로 골목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친절했고, 따뜻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언어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언어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모하는 것일 뿐, 인간의 언어로는 정의될 수 없는 신성이라는 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원을 잃어버린 이들이 이집트를 찾는다. 이집트의 발견, 그것은 내게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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