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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터키 과거사까지 정리하려는 프랑스 오지랖

등록 2006-12-28 22:42수정 2006-12-28 22:48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현장. 1915년 오토만 제국은 잔인한 방법으로 150만~20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했다. 전체 300만 아르메니아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인구였다. 1차대전 중이던 1915년 4월 영국군 침공이 침공해오자 터키는 동부 아나톨리아 지방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독립을 위해 봉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속에 150만명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현장. 1915년 오토만 제국은 잔인한 방법으로 150만~20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했다. 전체 300만 아르메니아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인구였다. 1차대전 중이던 1915년 4월 영국군 침공이 침공해오자 터키는 동부 아나톨리아 지방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독립을 위해 봉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속에 150만명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아르메니아 학살 부인하는 사람 처벌하는 프랑스 제노사이드 입법 통과뒤 터키 반발
인본적인 법질서 확립 긍정적 측면에도 “외부 힘으로 과거사 청산 강제 잘못” 비판도
안과 밖

한번 상상해보자. 어느 날 일본은 티벳인들에 대한 중국의 학살을 대규모 인종학살로 규정하고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처벌키로 하는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킨다. 그렇다면 중국은 가만히 있겠는가. 자신들의 과거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나라 과거를 들추어 분란을 일으키다니. 당신들은 관동대지진 때 재일조선인을 얼마나 많이 학살했던가? 라며 1923년의 조선인 학살사건의 인종학살적 성격을 부정하는 자들을 처벌하기로 한다. 물론 실제로 중ㆍ일간에 이런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테지만, 현재 진행 중인 프랑스와 터키 간의 역사분쟁은 다분히 이런 모습을 띠고 있다.

프랑스의 아르메니아 관련 제노사이드 입법

지난 11월 초 프랑스 하원은 지난 세기 초 터키에서 일어난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제노사이드(Genocide)였음을 부인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안을 절대 다수의 지지 속에 통과시켰다. 프랑스는 이미 홀로코스트의 공개적 부정을 처벌하는 법안을 1990년 통과시켰고, 2001년 유럽의 노예제를 ‘반인륜 범죄’로 인정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바 있다. 또 2001년 터키인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했으며, 이런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행위를 투옥과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격앙한 터키는 프랑스의 결정에 강력히 반발했다. 터키 정부는 약 200억 달러에 달할 자국의 국제입찰에 세번째 규모의 대터키 직접투자국인 프랑스 기업의 참여를 배제하기로 하는 한편, 전 세계 이슬람인들에게 프랑스 제품의 불매운동을 호소하고 나섰다. 동시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파트너로서 프랑스와의 모든 군사훈련 중단도 선언했다. 또 프랑스의 알제리인 집단학살을 부정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법안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법안상정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터키정부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EU(유럽연합) 가입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몇몇 국가에서는 노골적으로 터키정부의 제노사이드 인정을 EU 가입의 조건처럼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


우연히도 프랑스 국민의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던 날,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을 선정 발표했다. 그는 작년 외국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터키가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1백만명 학살을 상기시켰고, 터키에서는 누구도 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사건을 공론화시켰다가 국가 모독죄로 고발당했다.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에 대한 터키의 입장은 터키 밖의 판단과 많이 다르다. 1차 세계대전 와중에 수십만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죽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특정 인종에 가해진 계획된 살인이 아니라 전쟁과 이주 과중에서 벌어진 우발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터키로부터 독립하려는 아르메니아인들의 파르티잔투쟁 결과 생겨난 전쟁의 산물이지, 인종학살의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그 희생자 수가 150만이라는 아르메니아쪽 주장도 터무니없이 과장되었고, 실제로는 30~50만 정도이며, 동시에 그 정도의 터키군도 이 과정에서 함께 죽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터키 정부는 이 법안이 무엇보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정작 터키 자신이 이미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시행 중이어서 이에 대한 터키의 비난은 궁색할 수밖에 없다.

1914년 여름, 터키는 독일과 3국동맹의 일원으로 흑해의 러시아 항구들을 포격한다. 무너지는 오스만제국을 근대적 민족국가로 개혁하고자 했던 아타 튀르크의 ‘청년터키’는 자신들이 러시아와 서구세력한테서 위협당하고 있다고 보았다. 아르메니아인들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의 국경 양쪽에 흩어져 살고 있었고, 오래 전부터 오스만제국의 간섭을 벗어나 자치와 독립을 갈구해왔다.

1915년 4월 영국군이 터키의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하고, 곧 콘스탄티노플마저도 함락될 위기에 놓이자 터키 정부는 동 아나톨리아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을 그들의 집단거주지에서 터키 내지로 강제이주 시키기로 결정한다. 자신들의 등 뒤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독립을 위해 봉기할지 모른다고 본 것이다. 기차도 연결되지 않은 오지로의 ‘죽음의 행진’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추위와 기아, 질병, 강제노동 등으로 쓰러져갔다. 강제이주에 반대해 저항하는 수많은 아르메니아인과 그 지도자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됐으며, 살아남은 다수의 아르메니아인들도 시리아와 이라크의 사막지대로 추방되었다. 프랑스는 이들 아르메니아 난민을 유럽에서 가장 많이 받아들인 국가였다.

유엔의 제노사이드 협약

유대인 출신의 폴란드 법학자 라파엘 렘킨이 처음 제시한 ‘제노사이드’ 개념은 1948년 유엔협약을 통하여 국제적 인정과 동의를 얻게 된다. 이 협약은 제노사이드를 “민족적, 인종적, 혹은 종교적으로 구성된 주민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몰살시키고자 시도하는 행위”로 정의하면서, 인종학살과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행위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거나 악의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유대인 학살을 제노사이드의 원형적 형태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아르메니아인 학살 외에도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가 자행한 학살, 보스니아의 인종청소, 르완다에서 벌어진 투치족 학살, 스탈린과 모택동 치하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등 제노사이드로 인정받기 위해 국제적 합의를 기다리는 목록은 길다. 하지만 각 국가와 학자의 입장에 따라 희생자 집단의 성격, 살해의 의도와 범위 등에 대한 판단은 일치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의회는 오랜 토론 끝에 스탈린치하에서 수백만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강제수용과 기아로 희생된 사건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이미 여러 나라에서는 ‘진실 위원회’나 ‘역사위원회’ 등의 이름으로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식민지 지배, 혹은 지난 시대 독재정권에 대한 청산작업을 벌이고 있다. 분명 과거사에 관한 이러한 접근은 문명화된 사회의 성과를 보여주는 발전의 척도이며, 전통적으로 역사에서 주변화되었던 대상인 패자와 희생자들에게 집단적 기억의 길을 열어준다. 이는 민족주의적 자기정당성을 극복하게 하고, 국제적이며 인본적인 법질서를 세우도록 한다. 이러한 전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통하여 시작되었으며, 2002년 헤이그 국제형사법재판소 설립을 통하여 지속되었다.

하지만 90년 전 벌어진 학살이 제노사이드임을 결정할 수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과연 올바른 역사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사상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인가? 있다면 그 제한의 정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지난 11월 프랑스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우리에게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던진다.

바르게 기억하기의 어려움

이러한 법률제정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국민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역사적 사실에 대한 표현의 제한을 사상과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보고 근본적으로 이를 거부한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네오나치들의 공개적 시위나 행진도 의사표현의 자유로 인정되고 있다. 이들은 네오나치들에 대한 처벌이 한 사회 내에서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담론을 보장하기 위하여 반대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도록 만드는 부작용이 생기는 걸 우려한다.

다른 대안적 입장은 좀 더 고급스런 대처방법일 수 있는데, 과거에 일어난 불의와 희생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인종주의와 역사의 왜곡을 개선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이러한 방향을 지향해 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희생자들을 모두 곧바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 사회 안에서는 ‘희생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집단 간의 끝없는 ‘기억의 경쟁’에 들어가게 된다. 이럴 경우, 사상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로 상정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에 대한 신성모독이나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정을 법적으로 제어하고자 하는데서 모순이 발생한다.

프랑스의 이런 행보에 대해 주변 국가들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과거사 정리에 타자가 개입함으로써 당사자 스스로 청산할 수 있는 자유롭고도 예민한 공간을 오히려 좁혀 놓았으며, 정작 자신의 과거사에 대한 논의는 비껴가게끔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터키에게는 의사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정작 프랑스 안에서는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했다고 해서 처벌하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이를 통해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게 만든 공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터키의 보수 민족주의자들과 군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역사청산 작업에는 기억과 과거를 현실정치의 정책적 도구로 삼는 일에 대한 의혹의 눈길이 따르게 마련이다. 진실을 법으로 규정하고 제어하는 일은 타당한 일인가?

이진일 / 튀빙겐대 역사학 박사·성균관대 강사
이진일 / 튀빙겐대 역사학 박사·성균관대 강사
최근의 연구 결과, 미국의 역사학자 귄터 루이는 약 642,000 아르메니아인들이 죽었으며, 이는 전쟁 전 아르메니아 총 인구의 37%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Guenter Lewy, The Armenian Massacres in Ottoman Turkey, 2005). 지난 시대 자신들의 도덕적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공개하고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들을 인정하는 일은 인류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적 가치와 보편적 도덕 수준에 맞추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길만이 민족 간의 화해와 더 이상의 충돌과 갈등을 잠재우는 길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회는 스스로의 힘으로만 어두운 자신의 과거와 대면해야 하며, 이를 외부에서 법이나 힘으로 강제할 수 없다. 오르한 파묵의 외로운 외침이 프랑스 전체의 문제제기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진일 / 튀빙겐대 역사학 박사·성균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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