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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 귀한 가을, 탱고를 즐기는 ‘삼위일체 감상법’

등록 2015-11-26 18:59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이재익의 인디밴드 열전
‘반도네온 연주’ 고상지
탱고는 우리나라에 가장 덜 알려진, 또 가장 잘못 알려진 음악 장르 중 하나다. 독자들은 탱고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뭐가 떠오르나? 춤바람? 남미의 태양? 영화 <여인의 향기>? 혹시 ‘피아졸라’라는 이름을 기억한다면 아주 문외한은 아닌 셈. 거기에 아코디언 비슷하게 생긴, 소리 역시 비슷한 악기도 떠오른다면 보통의 수준은 넘는 셈이다.

바로 그 악기가 반도네온이고 오늘 소개하려는 아티스트는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다. 고상지밴드로도 활동하는 그는 최고의 반도네온 연주자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도 연주자들의 실력을 평가할 만큼 탱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최고라는 표현은 미뤄두지만, 그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반도네온 연주자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고상지의 이력은 무척 독특하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는 탱고를 몰랐다. 어릴 때 수학천재라는 소리를 곧잘 듣던 카이스트 학생이었을 뿐. 그런데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선물받은 뒤로 탱고음악에 푹 빠져 결국 일본과 아르헨티나까지 직접 가서 탱고음악의 거장들을 사사하는 열정을 불태운다. 그리고 하림과 김동률 등의 가수들 공연에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국내 음악팬들에게 얼굴을 알렸고 마침내 작년에 첫 번째 정규음반을 냈다.

보기 드문 여자 공대생이 더 보기 드문 반도네온 아티스트로 변신했고, 게다가 얼굴까지 예쁘다는 소문을 들은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음악을 찾아 들었다. 사진부터 찾아본 건 ‘안’ 비밀. 음반에는 모두 9곡이 있는데 기존의 탱고 음악은 한 곡도 없고 전부 그의 자작곡이다.

이런 용감한 여인이 있나! 음악을 들은 첫 느낌은 이국의 음식이 입에 너무 잘 맞아서 놀랄 때와 비슷했다. 분명히 탱고인데 흔하게 들어왔던 음악처럼 귀에 잘 스몄다. 함께 어우러지는 피아노와 기타 선율도 조화롭다. 꼭 영화음악처럼 들리는 곡들이 몇 개 있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애니메이션 마니아인 터라 영상에 자극받아 쓴 곡들이 많단다.

타이틀은 ‘빗물 고인 방’이라는 곡인데 나는 어째 타이틀이 아닌 곡들에 손이 더 많이 가더라. 개인적으로는 ‘출격’과 ‘아타퀴’(Ataque)를 추천한다. 악기의 음색은 쓸쓸한데 리듬은 흥겨운 것이 참 얄궂게도 매력적이다.

방송국 피디의 몇 안 되는 특권 중 하나를 이용해 프로그램에 섭외했고 그를 직접 만났다. 상당히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코앞에서 연주를 지켜보는 영광을 누렸는데 참 오래도록 여운이 남더라. 음악뿐 아니라 그가 했던 말도 자꾸 귀에 맴돌았다.

“탱고, 와인, 사랑은 삼위일체죠.”

사실 그는 사랑이 아니라 ‘여자’라고 말했으나 남녀평등 강박증이 있는 내가 임의로 표현을 대체했다. 어쨌든 그의 삼위일체론은 무척이나 그럴듯하고 낭만적으로 들린다. 거기에 나는 가을도 얹고 싶다. 계절마다 연상되는 춤이 있다면, 번득이는 여름햇살은 하우스뮤직의 비트를 닮았고 스산하게 휘날리는 가을낙엽은 탱고와 무척 닮았다. 기후가 점점 바뀌면서 가을이 귀해지고 있다. 11월이 채 한 주도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놀란 사람은 나뿐인가? 12월부터는 겨울이라고 법으로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12월이 되면 왠지 가을이라는 단어가 머쓱해진다.

그러니 이 귀한 가을이 가기 전에 탱고를 들어보자. 잘 모른다고 겁먹지 말고 일단 고상지의 음악을 들어보자. 어느 평범한 공학도를 반도네온 연주자로 만들 만큼 매혹적인 세계가 부쩍 가까워질 테니. 이왕이면 고상지의 삼위일체 감상법대로, 이성과 함께 만 원짜리 와인이라도 한잔 곁들여서.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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