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몇 년 만에 한국 인디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이 되었다. 선장인 '회기동 단편선'과 장도혁(퍼커션), 최우영(베이스), 장수현(바이올린)등 세 명의 선원들로 이루어진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불과 3년 전인 2013년에 <스페이스 공감>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얼굴을 알린 뒤 이듬해인 2014년에 첫 앨범 <동물>을 발표했다. 그리고 올 봄에 두 번째 앨범 <뿔>을 발매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팀은 <한겨레>가 선정한 '2014년 올해의 음반'에서 3위에 올랐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올해의 음반,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록 음반, 최우수 록 노래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최우수 록 음반을 수상했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런 식의 찬사를 보냈다. "훗날 한국대중음악의 역사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될 팀이다."
일단 팀의 구성부터가 몹시 독특하다. 멤버 네 명 중에 기타리스트가 따로 없이 보컬이 기타를 치고 바이올린 주자가 따로 있다. 리더인 단편선의 외모 역시 범상치 않다. 조석의 웹툰에서 걸어 나온 듯한, 딱 봐도 비범한 인상을 준다.
기대감에 차서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런데, 별로였다. 실험성은 충만했으나 즐길 부분이 많지 않아서 나와는 잘 안 맞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어려운 음악은 영 질색하던 성향이긴 했다. 록 매니아들이 잠깐이나마 필수적으로 빠져드는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을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핑크 플로이드'나 '드림씨어터' 정도가 내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런데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은 그 선을 넘어가 있었다.
올 봄에 2집 앨범이 나왔을 때, 또 음악 좀 듣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도 입을 모아 칭찬 하길래 약간의 의무감으로 앨범을 들어보았다.
2집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바이올린을 담당하던 멤버 권지영이 탈퇴하고 장수현이 영입되었다. 바이올린 전문가는 아니지만, 연주가 달라졌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었다. 1집에서는 독특한 음색을 얹어주는 양념 같은 존재였다면, 2집 앨범에서 바이올린은 자기 자리를 완전히 찾았다. 몇몇 곡에서는 바이올린이 곡의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인상까지 주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1집에서 불편했던 부분, 바이올린으로 국악의 느낌을 주는 부분이 사라져서 더욱 좋았다.
2집 앨범을 몇 번 듣고 다시 1집 앨범을 들어보았더니, 이게 무슨 조화일까? 노래들이 다 좋아졌다. 그 사이 내 취향이 바뀐 걸까? 그럴 리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이 원래 그런 음악이기 때문이다.
리더이자 작사·작곡을 도맡아하는 팀의 선장 단편선은 인터뷰 때마다 이런 말을 종종 한다. 자신의 음악을 편안하게 들어달라고. 어불성설이다. 이토록 낯선 음악을 어떻게 편안하게 들을 수 있나? 사람도 첫 인상부터 호감이어서 단박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첫 인상은 별로인데 자꾸 만나다보면 사람이 진국인 경우도 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은 명백히 후자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듣고, 조금 더 신경 써서 듣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온전히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어떻게 해서든 더 쉽게 들리게, 더 편하게 들리게, 단박에 청자를 사로잡게 하기 위해 작정한 노래들이 난무하는 요즘, 과연 이런 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단편선 선장님의 뚝심과 선원들의 실력을 믿어본다. 이들은 더 멀리 항해할 것이고, 아직은 어딘지 모를 목적지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같이 따라가 보자. 이들의 항해는 뱃멀미를 감수하고서도 따라가 볼 가치가 충분하다.
어쩌면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을 때 경험하게 되는 낯설음과 불편함조차도 단편선이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생각이 바뀌었다. 이 칼럼을 쓰기 전에는 조금 더 익숙하고 대중적인 쪽으로 움직여주기를 주문하려고 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없어졌다. 대신 이렇게 부탁하고 싶다. 어디로든 선장님이 원하는 대로 가세요. 그저 꿋꿋이 항해를 계속해주시기를.
추천곡은 2집 앨범에서 ‘모든 곳에’. 이 노래가 마음에 들고, 좀 더 낯선 경험을 원한다면 1집 앨범에 실린 ‘공’이라는 노래에 도전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