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늘 이 글이 '인디밴드 열전'이라는 기획의 마지막 칼럼임을 알려드려야 하겠다. 1년 동안 독자들이 쉽게 접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음악들을 소개해왔다. 칭찬을 들으려고 시작한 일은 결코 아니었으나 많은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메일을 받았고, 심지어 자신이 소개된 칼럼을 읽은 밴드로부터 연락이 와서 멤버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내 할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좋은 음악을 널리 알리는 일은 내가 수행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적 책무이니까. 이토록 좋은 기획을 여기에서 멈추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쓰고 싶은 기획이 떠올라서.
어쨌든, 오늘 인디밴드 열전의 마지막 주인공을 정하기 위해 정말 무척이나 고심했다. 아직 소개하지 못한 인디 아티스트들이 너무 많기에. 그러나 이들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펑크록 밴드 극렬이다. ‘극렬파괴기구’라는 이름의 준말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죽도록 달리기 위해 모인 혈기방자한 10대 펑크 키드들이 떠오르지만, 실상은 반대다. 일단 밴드 ‘극렬’의 음악은 전혀 극렬하지 않은, 말랑말랑 멜로딕 펑크록이다. 그리고 멤버들의 나이는 1년 동안 이 칼럼에서 소개한 아티스트들 중에 제일 많다. 마흔이 넘었다. 특이한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대구에서 시작해 아직도 대구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방밴드다. 이들의 페이스북에 가보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 떡하니 적혀있다. ‘대구의 펑크 아재들’.
결성한 지 무려 10년. 지방에서 음악 좀 한다하는 친구들이 당연히 선택하는 서울행을 거부하고 ‘우리 동네’에서 음악을 하며 버텨왔다. 비록 발표한 앨범이나 곡 수는 많지 않지만 꾸준히 달려왔다. 대구 인디음악의 자존심, 지방 인디뮤지션의 상징 등등 영광스러운 타이틀도 얻었다. 여전히 작은 무대에서, 동네 행사에서 팬들 앞에 서서 연주하는 일을 즐긴다. 어쩌면 이들은 이 칼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극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은 일상성이다. 이들은 언제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노래해왔다. 거창한 전복의 메시지나, 철학적 고민, 모호한 메타포는 철저히 배제된다. 보통 오래 활동하다보면 자신들만의 세계로 함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반대다. 점점 더 대중을 지향한다. 대중으로 모자라 민중과 노동자를 지향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첫 음반 <청춘기>를 발표한 이후, 데뷔 10년 만에 새 음반이 나왔는데 타이틀이 너무나도 뭉클하다. <우리가 서 있다>.
이들은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지방에서 힘겨운 음악활동을 하는 후배들 뒤에? 냉정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시민들 속에? 많지는 않아도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이들의 이름을 외치는 관객들 앞에?
새 음반에 담긴 다섯 곡은 무척이나 듣기 즐겁다. 작곡의 완성도도, 소리의 질도 떨어졌던 초기 곡들에 비하면 진일보라는 말을 써도 좋다. 그 중에서도 딱 한 곡을 꼽자면 ‘소가 되어’라는 곡이다. 몇 줄 안 되는 가사를 보자.
‘난 오늘도 소가 되어 일터로 간다 / 나는 나는 누구를 위한 소이던가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 나는 나는 소가 되어 일터로 간다 / 오늘도 소가 되어’
이 짧은 가사를 반복하는 노래를 듣다보면 오늘 출근길에 마주친 사람들의 선한 눈동자가 생각난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약국 문을 열기 위해 나가시던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센 척 하지만 심약한 팀장님의 구두가 떠오르고 박봉에도 너무 묵묵히 일해서 나를 미안하게 만드는 막내 작가의 어린 손이 떠오른다. 햄버거를 싣고 달리는 청년의 헬멧도, 편의점 바코드를 찍는 알바생의 조끼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리고 어느덧 20년 가까이 일을 해 온 창작-방송 노동자, 나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거창하기는커녕 즐겁고 신나는 노래인데 왜 이리 마음이 뭉클해지는 걸까. 자꾸 들으면 훌쩍 눈물까지 난다. 참 좋은 밴드의 좋은 노래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노동가요, 출퇴근길의 동무로 이 노래를 강력 추천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 프로그램에 이들을 출연시킬 날이 오기를, 유체이탈 화법으로 간절히 원해본다. <끝>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인디밴드 열전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다음에는 새로운 주제의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주제가 뭐냐고요? 설명은 넣어두고 기대와 호기심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