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첫 칼럼 주인공으로 누구를 모셔야 할까 무척 고민했다. 그러나 환하게 웃는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고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김반장. 그리고 그의 밴드 윈디시티. 특이하게도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하는 김반장은 ‘언니네 이발관’의 드러머로 활동을 시작해서 2003년 ‘아소토 유니온’이라는 팀의 리더로 얼굴을 알렸다. 딱 한 장의 앨범만 내고 해체되었지만 아소토 유니온이 그 시절 던진 메시지는 의미심장했다.
‘너희가 아르앤비(R&B)를 아느냐?’
요즘이 아이돌의 전성시대라면 그 당시는 아르앤비 가수들의 전성시대였다. 박효신으로 대표되는, 소위 소몰이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들이 가요계를 점령하고 있었다. 누가 더 ‘워우워우’를 잘하느냐를 경쟁이라도 하듯 다들 소를 몰고 다녔고 사람들은 그것을 ‘소울’이나 ‘아르앤비’라고 불렀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김반장과 아소토 유니온은 진짜 소울, 진짜 아르앤비가 뭔지를 보여주었다.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싱크 어바웃 유’(Think about’ chu)는 지금 들어봐도 이게 정말 십수년 전에 나왔던 가요인가 싶다. 수준급의 연주와 자신만만한 보컬, 세련된 편곡까지, 흑인음악의 매력을 듬뿍 담아냈다.
그 후 김반장은 진짜 발톱을 드러낸다. 나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밴드를 꼽으라면 반드시 열손가락에 꼽힐 ‘윈디시티’를 이끌고 다시 등장했다. 그가 예전부터 추구하던 흑인음악에 레게의 양념을 듬뿍 쳤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러브 슈프림’(love supreme)이나 ‘엘니노 프로디고’(elnino prodigo)를 들어보라. 달콤하고, 신이 난다.
점점 더 흑인음악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의 행보를 보며 혹자는 한국적 정서가 없다며 쓸데없는 비판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비판과 전혀 상관없이 김반장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음악과 접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무려 한국의 굿과 레게를 절묘하게 섞은 노래들을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굿과 레게 음악이 주술이라는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절묘한 교배라고 하겠다.
이쯤에서 오늘 칼럼의 제목에 왜 괴짜라는 표현을 썼는지를 밝혀야겠다. 나와 동갑이어서일까? 몇 번 만난 자리에서 김반장의 개인적인 삶이 궁금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내가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는 정릉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 산다. 샤워 대신 산의 개울에서 목욕을 하고 동네 할아버지들과 산에 올라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어울린단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데, 옷을 얻어 입기도 하고 여행을 다닐 때면 노숙도 마다 않는다고! 그는 자본주의의 엄숙한 질서를 온몸으로 비웃으며 사는, 이 시대의 진정한 히피라고 할 만하다. 사회시스템에 대한 의식적인 저항이나 화제를 끌기 위한 쇼가 아니기에 그의 삶은 나에게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피디로서 장담하는데 그에게는 엄청난 예능거리가 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예능거리다. 그런데도 아직 방송의 때를 타지 않고 남아 있음이 다행스럽다. 예능피디들이 그를 잘 몰라서 섭외를 안 했는지, 섭외를 요청했으나 그가 거절했는지, 아니면 나처럼 그를 아끼는 마음에 섭외를 일부러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만의 삶을 살면서 그만의 음악을 하기를 바란다. 인디 뮤지션으로 출발해 이제는 연예인이 되어버린 장기하나 ‘장미여관’의 육중완을 볼 때 느껴지는 묘한 아쉬움을 김반장에게서조차 느끼고 싶지는 않으니까.
추천곡은 윈디시티 1집의 ‘러브 슈프림’! 새해가 밝았다고 갑자기 세상이 한결 더 좋아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새해에는 더 사랑합시다. 함께 노래합시다. 랄랄라.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