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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양화대교를 건너기에…

등록 2015-10-29 19:06수정 2015-10-29 21:31

이재익의 인디밴드 열전
① 제8극장
1970년대의 원조 ‘귀요미’ 가수 혜은이의 노래 중에 ‘제3한강교’라는 노래가 있다. 한강에 세 번째로 놓은 다리라는 뜻으로, 한남대교가 바로 제3한강교다.

한강 다리를 소재로 노래를 만드는 일이 흔치 않기에 이 노래는 한강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노래로 불려왔는데, 수십년 만에 드디어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주인공은 양화대교.

자이언 티의 노래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양화대교를 소재로 무려 음반을 만든 아티스트가 둘이나 더 있다. 필자가 올해 최고의 힙합 음반으로 꼽는 ‘딥 플로우’의 <양화>도 있고, 오늘 소개하는 청년 록밴드 ‘제8극장’의 2집 음반 <양화대교>도 있다.

제8극장.
제8극장.
제8극장이라는 이름이 낯선 독자들이 더 많겠지만 데뷔한 지 7년차 된 4인조 밴드다. 직접 기타와 베이스도 치면서 노래하는 보컬 서상욱을 비롯해 기타, 베이스, 드럼의 균형 잡힌 록밴드 편성 속에 키보드와 클라리넷도 가끔 얹어서 다채로운 색을 표현한다.

데뷔할 때만 해도 판타지 가득한 주제를 노래했다. 1집 음반 제목이 무려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 콘셉트는 ‘항해’.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현실 세계의 항구로 돌아왔다. 그 즈음 탄생한 음반이 바로 2집 <양화대교>다.

친구한테 돈을 빌려놓고도 뻔뻔하게 당장은 힘들어서 못 갚겠다고 말하는 첫 곡 ‘종현아’만 들어봐도 이들의 음악이 얼마나 일상 속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음반이 잘 되면 갚아주겠다고 노래했는데 못 갚았을 것 같다. 불쌍한 종현씨. 환상과 환각을 오가는 초기의 느낌도 아직 음반 곳곳에 묻어있는데 적절하고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제8극장의 본령은 ‘활기’다. 가난하고 힘겹게 인디밴드 생활을 이어나간다고 자조하다가도 음악을 연주할 때면 금방 신이 나서 듣는 사람까지 들썩이게 만들던 기억이 생생하다. 멤버들이 1980년대 생들인데도 불구하고 만드는 노래들이 명백히 60~70년대 로큰롤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사실 덜 알려져서 그렇지, 가장 먼저 양화대교로 노래를 만든 그룹은 제8극장이다. 제8극장의 2집 음반이 2013년, 자이언 티의 노래가 2014년, 딥플로우의 <양화>가 올 5월에 나왔으니 매년 양화대교를 소재로 노래가 나온 셈이다.

대체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양화대교를 노래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젊은 뮤지션들이 가장 많이 건너는 다리가 양화대교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양화대교의 북단에 젊음의 메카로 불리는 홍대가 있고 그 길은 신촌까지 이어진다.

30년 전 슈퍼스타 혜은이가 ‘제3한강교’에서 꿈과 젊음을 노래했고 요즘 대세인 자이언 티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노래한 데 반해 배고픈 인디밴드 제8극장은 지금 그들이 건너는 양화대교를 노래한다. 음반 사진부터가 맨발로 양화대교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피곤한 종아리다.

멤버들이 밝히는 이 노래의 탄생 배경이 재미있으면서 씁쓸하다. 압구정에서 공연을 마쳤는데 분위기가 정말 별로였단다. 생각해보니 강남에서 한 공연은 언제나 별로였다고. 괜히 위축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화대교를 건너는데 갑자기 고향에 돌아온 듯 반가운 기분이 들어서 노래를 썼단다.

“강 건너 행사 마치고 기분 잡쳤네. 찬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지금 이제 막 양화대교. 압구정에서 동창회 조금 마셨네. 지친 머릴 차창에 기대고 보니 난 지금 이제 막 양화대교.”

양화대교 얘기를 실컷 했지만 정작 추천곡은 따로 있다. 정말 혼자 듣기에는 아까운, 말티즈 새끼만큼 사랑스러운 러브송, ‘넌 뭐라 할래.’ 들어봅시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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