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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자유분방 읊조림·고함…예술에 답은 없나봐

등록 2016-03-17 20:55수정 2016-03-18 11:35

사진 교육방송 제공
사진 교육방송 제공
이재익의 인디밴드 열전
무키무키 만만수
2012년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두시 탈출 컬투쇼>를 연출하던 때였는데, 당시 독특한 신인 가수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당시 조연출로 있던 후배 피디(PD)가 조심스럽게 이 팀을 소개해주었다.

“선배님! 파격에 있어서는 이 팀만한 신인은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전해준 시디(CD)를 받아들고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음반 재킷 사진은 목욕을 즐기고 있는 멤버들 모습이었다. 젊은 여자 두 명이 목욕하고 있는 여탕의 풍경을 가림처리도 없이 철컥 찍은 사진이니 야할 법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전혀 야하지 않았다. 동네 목욕탕에서 자기들이 목욕하는 모습으로 음반 재킷을 만든 대담한 여성 듀오, 그들이 오늘 칼럼의 주인공 ‘무키무키 만만수’다.

기타를 치는 만수와 구장구장(우리 전통악기 장구를 개조한 타악기)을 연주하는 무키, 두 명의 동갑내기 친구로 결성된 무키무키 만만수는 우리가 아는 대중음악의 문법을 완전히 무시한다.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이런 말들을 한다. 여자 산울림이다, 장기하의 듀엣 버전이다 등등.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산울림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기도 했고 장기하 식의 능청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들은 록이나 포크의 전통에서 완벽하게 자유롭다. 이들의 음악에는 누구의 영향, 음악적 지향성 따위는 없다. 그저 충격과 새로움이 전부다.

데뷔 음반 <2012> 역시 음반을 제작하겠다거나 뮤지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목표가 있어서 낸 게 아니었다. 학교 축제와 지하철역 등에서의 공연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유튜브에서 공연 영상이 화제가 되었고 영상을 본 비트볼 뮤직의 이봉수 대표가 음반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괴작인 데뷔음반 <2012>가 탄생한 것이다.

모두 12곡이 담겨 있는 이 음반을 듣는 데는 30분이면 족하다. 노래들 길이가 워낙 짧기 때문인데, 가사 역시 음반 전체 콘셉트는커녕 곡 안에서의 서사구조도 없다. 가사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인 읊조림과 고함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이들의 노래들 중에 가장 유명하달 수 있는 ‘안드로메다’의 가사를 보자.

‘무당벌레 장구벌레 풍뎅이벌레… 생각을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네요. 그래서 우리는 킬리만자로 독버섯 코끼리 바위의 연꽃. 벌레벌레벌레벌레벌레벌레벌레….’

이 두 줄이 가사의 전부다. 2분이 채 안 되는 이 노래의 후반부는 계속 ‘벌레벌레벌레’를 외치는 것으로 치닫는다. 듣다 보면 마치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이 노래의 공연 영상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려 있는데 놀랍게도 거의 반이 외국인들이 남긴 영어 댓글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왜 이걸 20번 넘게 되풀이해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듣는 걸 멈출 수 없다.’

다른 노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곡 하나 더 정상적이고 덜 이상하다고 가리기 어렵다. 모조리 다 희한하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지점은, 이토록 황당한 노래들밖에 없는데도 자꾸만 듣게 된다는 것이다. 팬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2012년 이후 전혀 노래를 발표하고 있지 않은데도 아직도 이들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한 누리꾼이 이들의 음악을 듣고 남긴 촌철살인 리뷰를 소개하며 오늘의 칼럼을 마칠까 한다. 역시 예술에 답은 없나봐.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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