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쇼케이스나 파티에 가끔 들를 때가 있는데, 이런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먼저, 동안 미모로 명성이 자자한 여배우가 등장한다. 나이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정도. 다들 탄성을 내뱉는다. ‘와. 진짜 관리 잘했다. 20대가 울고 가겠어.’ 그런데 뒤이어 진짜 20대 초반의 걸그룹 멤버가 등장한다. 그러면 다들 머쓱해진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어려 보이는 것과 진짜 어린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외모뿐 아니라 영화도 젊은 영화가 있고 소설도 젊은 소설이 있다. 외모와 달리, 창작물은 창작자의 생체 나이가 아니라 영혼의 나이가 중요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연륜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 소개하는 밴드는 모든 것이 젊은 밴드다. 멤버들도 젊고 음악도 젊다.
데드버튼즈. 결성한 지 4년 남짓. 기타와 노래를 맡은 홍지현(사진 오른쪽)과 드럼과 노래를 맡은 이강희(왼쪽), 이렇게 두 명이 전부인 2인조 밴드다. 베이시스트가 없다는 점, 노래를 두 명이 나눠 부른다는 점에서 바로 지난 회에 소개한 빌리카터와 닮았다. 심지어 여러 장르의 음악을 뒤섞어 소화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그래서인지 두 밴드는 얼마 전 합동 공연을 펼쳤다. 이 공연에 못 가본 게 아직까지도 한이다. 아마 올 한 해 가장 후회되는 일로 남을 듯.
각종 공연을 통해 음악을 선보이던 데드버튼즈는 올해 초에 대망의 정규 1집 음반을 발표했다. 음반 타이틀도 젊음의 패기 넘치는 ‘섬 카인드 오브 유스'(Some kind of youth). 우리말로는 ‘어떤 젊음', ‘일종의 젊음'쯤 되겠다. 정말 젊음의 생기로 꽉 찬 음반이다.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 처음부터 끝까지 넘실거린다.
‘우린 뛰고 있었지. 너무 두근거렸지. 아무것도 장담할 순 없었어. 손에 잡히지 않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항상 갈망했었네. 난 놓치고 싶지 않아.’
이들의 노래 ‘스트레인저스’(Strangers)의 가사다. 근래 들어 이만큼 정확하게 젊음의 속성을 간파한 노래 가사가 있었던가? 또 다른 노래 ‘16-22’는 조금 더 암울하다.
‘내가 16살일 때 나는 내일 없는 낙제생이었어. 내가 17살일 때 나는 노동자였고 아무 낙이 없었어. 내가 18살에 나는 꿈을 갖고 도시로 왔지. 그리고 이제 나는 22살 여전히 꿈을 꾸고 잃을 것도 없지.’
참 이상하지. 꽤나 우울한 가사인데도 불구하고 노래를 듣고 나면 한 번 맞아본 적도 없는 호르몬 주사를 맞은 것처럼 젊어진 기분에 휩싸이고 활력이 생긴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젊음의 노래는 다 그랬다. 밝은 내일을 노래하기는커녕 개 같은 현실을 욕하고 기성세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런데도 듣고 나면 희망의 에너지가 생겼지. ‘16-22’는 젊음의 송가가 가져야 할 아이러니한 미학을 멋지게 획득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현실 성토에 이렇게 말하는 어른도 있다. 왜 대안 없이 불평만 늘어놓느냐고. 정말 주먹을 부르는 헛소리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어린애들이 대안까지 내놓아야 하나? 애가 배고프다고 울면 돈 벌어오라고 하는 부모가 부모인가? 대안은 어른들의 몫이다. 그래서 어른 대접을 받는 거고. 젊은이들한테 대안 운운할 생각이라면, 존댓말 들을 생각부터 집어치우시길.
내가 너무 꼰대처럼 살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독자라면 반드시 볼륨을 크게 하고 데드버튼즈의 ‘16-22’를 들어보길. 2016년 서울의 거리를 누비는 진짜 젊음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조금 더 젊어질 수 있을지도. 하루 5분만 시간을 내어 체조하면 당신도 사과 같은 엉덩이를 얻을 수 있다는 헬스 트레이너의 거짓말과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들어보시라. 5분도 아니고 그 절반인 2분30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