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보면서 가장 어색했던 건 이소연의 존재였다. 오해 없길. 나는 이 배우에 대해 어떤 유감도 없고 〈깃〉과 〈사랑의 기쁨〉과 같은 영화들에서 보여준 연기는 정말로 좋아한다. 문제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그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 김유리에 있었다. 한마디로 이 사람은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다.
수퍼맨이나 배트맨도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훌륭한 영화 주인공들이다. 그렇다면 김유리의 경우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건 이 캐릭터에게 내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유리는 철저하게 기능적인 존재이다. 곧 직장에서 밀려나는 중년남자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플라토닉한 애정으로 젊음을 되찾아주며 그의 온갖 고민을 자발적으로 들어주는 20대의 예쁜 아가씨. 물론 이런 사람들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백만 명 중 한 명 정도는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김유리를 캐릭터로 다루지 않는다. 김유리는 순전히 곧 퇴직하는 주인공 조민혁을 응원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종의 치어리더 로봇인 셈이다.
도대체 왜 조민혁에게는 김유리가 필요할까? 그의 주변에는 대화를 나눌 사람들도 있고 대화를 나누어야 마땅한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그의 아내와 진로 걱정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그의 아들은 어떤가? 그들과 의무적인 의사소통만 제대로 해도 조민혁은 영화 내내 바쁘다. 하지만 영화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영화의 설정과 연결된 고별 공연을 준비하지 않는 동안엔, 조민혁은 김유리와 노닥거리거나 그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내 악당들을 상대하며 보낸다. 물론 이 악당들도 김유리처럼 존재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러기엔 그들은 너무 단순하고 멍청하다. 한마디로 조민혁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람들과는 거의 소통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이 남는다면? 설교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이룩한 것이고 회사에서 청춘을 보낸 우리 중년 남성들은 어쩌고저쩌고….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지겹다. 국가와 국민과 세대가 주어 자리를 차지하는 일반론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은 늘 지겹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국민이나 세대로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개인일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 고유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건 가족이나 친구들이다.
그런데 왜 조민혁은 자기 비위를 살살 맞추어주려는 허공의 치어리더와 계획 같지도 않은 엉터리 계획으로 그를 몰아붙이는 시늉만 하는 악당들에게만 매달리고 정작 자신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어야 할 가족은 외면하는 걸까? 그건 그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진짜 고민을 외면하고 있다는 말은 아닐까?
듀나/소설가·영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