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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소년에게 음란함을 허하라

등록 2015-11-12 20:00수정 2015-11-13 10:38

이재익의 인디밴드 열전
국어사전에 ‘음란’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음탕하고 난잡함’. 흠. ‘음탕’ 역시 뜻이 모호하긴 마찬가지여서 다시 찾아봤다. ‘음란하고 방탕함’. 뭐지? 돌려막기인가? 결국 사전에서 정확한 뜻을 구하지 못하고 내 스스로 뜻을 정리해본다. ‘성적인 의도와 행동이 과함’. 동의하는가? 어쨌든 ‘음란’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고 부정적인 이미지인 건 틀림없다.

여기, 음란이라는 단어를 이름에 떡하니 붙인 아티스트가 있다. 무려 음란소년. 커피소년, 재주소년과 함께 인디음악의 3대 소년이라고 묶는다면 이것 역시 과할까?

이름은 과격하나 음악의 결은 극도로 부드럽고 감상적이다. 하지만 가사 내용만큼은 이름 못지않다. 2012년에 발표한 1집 음반의 수록곡들을 보자. 첫 번째 곡은 ‘오빠는 이러려고 너 만나는 거야’. 헉. 중간에 이런 노래 제목도 있다. ‘사랑은 보수, 섹스는 진보’. 큭큭큭. 무려 <에스비에스>(SBS)의 심의를 통과한 마지막 노래는 ‘두시까지만’. 이 노래의 후렴구는 이렇다.

“나와 함께 있어줘요. 두시에는 꼭 집으로 보내줄게요. 두시가 되도 내가 그댈 붙잡으면 그때에는 날 두 번 다시 안 봐도 되요.”

음란소년의 노래를 들으면 부끄럽다기보다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음란해서인가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반응을 물어봤더니 다들 비슷한 반응이다. 귀엽다고. 재치만점이라고. 그러나 가요심의의 엄격한 규정이 이런 재치를 받아줄리 만무하기에 1집 음반의 절반이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절반이 통과한 게 어디냐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안타깝다.

특히 ‘사랑은 보수, 섹스는 진보’를 자꾸 듣고 있노라면 새누리당 지지자와 새정련 지지자도 서로 사랑에 빠져 침대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조영남의 ‘화개장터’ 이후로 국민대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노래라고 한다면 나도 재치만점?

음란소년의 음악을 장난기에서 비롯한 일회성 이벤트로 생각하던 평론가들은 후속작업이 이어지자 당황했다. 더욱 음란해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더 이상 음란할 수 없었으니) 음악은 더욱 성숙했다. 2014년에 발표한 미니 음반 <입으로 해줘요>에서는 안타깝게도 딱 1곡 ‘잠시도 빼기 싫어’만이 방송심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성인들을 위한 내 추천곡은 타이틀곡 ‘입으로 해줘요’다. 오직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소년의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이 노래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자극한다. 가사 소개는 생략. 에헴.

요즘 가수 아이유의 신곡을 둘러싼 선정성 논란이 거세다. 이 논란이 마치 편 가르기로 번지는데 적어도 내 칼럼을 읽는 독자님들만큼은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문학작품의 캐릭터에 성적인 상상력을 덧입힌 아이유도 충분히 쓸 만한 가사를 썼다고 생각하고 그의 노래가 꼬마 캐릭터를 성적으로 대하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노래를 들을지, 안 들을지, 듣고 불쾌하다고 의사를 표시할지, 듣고 나니 노래가 좋아 구입까지 할지,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표현도, 표현에 대한 비판도 자유로워야 한다.

역사교과서도 한 가지밖에 쓸 수 없는 이 엄격한 시대에, 음란소년의 음악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음란함이 넘치는 사회도 위험하지만 이 정도 음란함조차 허락하지 못하는 사회는 더 위험하니까. 좀 딱딱하게 말하자면, 법이 허용하는 기준 안에서 아티스트들은 충분히 음란해질 수 있으며 권위와 신성함을 비틀 자유도 있다. 그런 아티스트들의 글과 노래가 불편한 사람들은 창작자를 욕하고 혼낼 자유가 있고. 이 칼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다만 저를 혼내려거든 주먹으로 말고, 입으로 해줘요.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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