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김재섭 기자의 @어바인 통신
최근 미국 중부지역을 여행하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미주리주 캔사스에 사는 미국 사람 집에서 며칠 묵었다. 40대 중반의 부부와 8학년(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로 구성된 백인 중산층 가정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집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게 거실의 텔레비전 앞에 놓여있는 조이스틱(비디오게임 도구)이었다.
오후 3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숙제를 서둘렀다. 4시40분 아빠가 도착하자, 아이가 거실로 뛰어나와 비디오게임기와 텔레비전을 켠다. 아빠도 옷만 갈아입고 조이스틱 하나를 잡고 아이와 함께 소파에 앉는다. 한시간 가량 게임을 즐긴 뒤 둘은 게임을 끝내고 아빠는 엄마와 저녁을 준비했다. 아이는 숙제를 마저 했다. 저녁과 설거지까지 마치니 7시, 다시 게임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엄마까지 가세했다. 8시가 되자 셋은 동시에 게임을 끝냈다. 이후 이들은 각자 침대에서 30분~1시간 가량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이들 가족은 비슷하게 하루를 보냈다. 특이한 것은 아빠와 아이 모두 스스로를 “게임 광”이라고 하면서도 오후 8시 이후에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요일만 한시간 늦춰 9시까지 한다. 또한 항상 둘 이상이 함께 게임을 즐긴다. 컴퓨터도 아이 방과 거실 등에 초고속인터넷에 연결된 상태로 3대나 설치돼 있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혼자 하는 게임은 재미없다”는 게 한결같은 대답이다. 아빠가 퇴근한 뒤에는 이동전화를 자동응답 상태로 전환해, 다음 날 출근 전까지는 전화받기를 거부하는 점도 신기했다.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혼자 컴퓨터로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게 일반적이다. 아이들은 자기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엄마(혹은 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아빠(혹은 엄마)는 늦은 퇴근으로 집에 없는 게 우리나라 가정의 일반적인 저녁 풍경이다. 맞벌이 가정에선 아이들끼리 컴퓨터게임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설령 부모 모두 집에 있다 해도 아이들과 게임을 함께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냥 문화가 다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게임중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인터넷중독’ ‘휴대폰중독’ 등도 마찬가지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컴퓨터로 혼자 즐기는 온라인게임 이용자가 많은 반면, 미국은 여럿이 거실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함께 보며 즐기는 비디오게임이 더 인기다. 또 미국의 게임 이용자 가운데 엄마인 30대 이상 여성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비디오게임으로 게임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어 거부감이 적고, 따라서 더 유망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나라 게임업체들, 특히 게임산업 육성에 애쓰고 있는 정부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가족이 함께 게임을 즐기는 상황에서는 중독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재섭 기자jskim@hani.co.kr
김재섭 기자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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