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호등] 미국 소비자심리지수의 충돌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TV 토론회에서 자주 사용해 화제가 된 어록이다.
이 말이 지금도 기억되는 이유는 정곡을 찌른 질문이기 때문이다. 유권자 심리가 선거의 바로미터라면 소비자 심리는 경기의 선행지표다. 마음이 변하면 투표장에서나 시장에서나 행동으로 보여준다.
살림살이가 나아진다고 생각할 때 사람은 지갑을 연다. 가계의 소비지출이 총수요의 60%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심리 변화는 소비는 물론 실물경기에 중요하다.
경제연구기관들은 소비자들이 경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내를 알아보기 위해 주기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요즘 살림살이 나아졌나요, 앞으로는 좋아질까요?”라고 물은 뒤 소비자들의 응답을 모아 수치로 나타낸다.
크리스마스가 낀 연말은 전세계적으로 쇼핑 시즌이다. 특히 미국은 기업들의 장부가 흑자(black ink)로 바뀐다는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와 온라인 할인행사가 펼쳐지는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를 시작으로 최근 한 달 동안 연말 쇼핑 시즌이 이어졌다. 이 기간에 미국 가계 연간 소비의 20% 이상이 발생한다. 연말이면 주식시장에서 ‘산타 랠리’란 말이 나오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미국소매협회(NRF, National Retail Foundation)는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 호전으로 올 쇼핑시즌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3.9% 증가한 6021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최근 10년 동안의 평균 증가율(3.3%)과 지난해 증가율(3.45%)을 웃도는 수치다.
소비대국 미국의 최대 쇼핑시즌은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들에게도 한해 실적을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우리가 먼 나라 미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관찰하는 이유다.
엇갈린 미국의 11월 소비자심리지수
미국은 여러 기관에서 소비자 심리를 조사해 지수로 만드는데, 대표적으로 컨퍼런스보드(conference board)가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신뢰지수(CCI: Consumer Confidence Index)와 미시간대학교가 격주로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CSI: Consumer Sentiment Index)를 들 수 있다.
두 기관의 소비자지수는 가정에 설문조사를 해서 작성한다. 지수가 오르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으로 소비지출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수가 떨어지면 소비자들이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보고 지갑 열기를 꺼린다는 뜻이다.
같은 성격의 소비자지수이지만 항상 비슷한 수치를 보이거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지난 11월 두 지수의 결과는 엇갈리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컨퍼런스보드 소비자신뢰지수는 전달보다 2.0p 하락한 70.4를 기록했다. 석 달 연속 떨어지며 지난 4월 이래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상승을 점쳤던 전문가들은 10월 연방정부 부분 폐쇄(셧다운)로 일시적 해고가 생기면서 노동시장에 대한 전망이 나빠져 소비심리가 위축됐다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연말 소비에 대한 기대감을 낮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하루 뒤에 발표된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전달보다 1.9p 상승한 75.1을 기록하며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았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연방정부의 부분 폐쇄 종료로 노동시장 상황이 회복돼 소비 심리가 호전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연말 소비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하룻새 180도 달라진 전문가들의 해석은 차치하고,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두 지수가 하락과 상승으로 상충된 결과를 보인 이유는 뭘까?
소비자신뢰지수(CCI) vs 소비자심리지수(CSI)
먼저 발표주기와 시점이 다르다. 미국의 민간 경제조사기관인 컨퍼런스보드(www.conference-board.org)는 매달 미국 전역의 5000여 가구를 표본 추출해 전화나 이메일로 설문조사한 뒤 마지막 주 화요일에 소비자신뢰지수를 발표한다. 실제로는 절반인 2500가구 정도만 마감 전에 응답해, 뒤늦게 도착한 1000여 가구의 응답을 포함한 결과는 한 달 뒤에 개정 수치라는 형태로 공개된다.
미시간대가 톰슨로이터와 함께 전화로 설문조사하는 소비자심리지수의 표본 규모는 500명으로, 컨퍼런스보드 조사보다 훨씬 적은 대신에 격주로 발표된다. 매월 두 번째 금요일에 잠정치(예비지수)를 발표하고 확정치(최종지수)는 같은 달 마지막 금요일에 공개한다. 확정치는 발표 직전의 응답까지 포함한 수치여서 컨퍼런스보드 지수보다 최근의 상황을 더 신속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두 기관이 조사하는 표본의 유형도 달라 결과의 연속성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컨퍼런스보드는 매달 새로운 사람을 조사하지만 미시간대는 새로운 사람과 동일한 사람을 일정비율로 섞어 조사한다. 이러한 조사방법의 차이로 두 지수의 월간 변동폭을 보면 컨퍼런스보드 지수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설문 내용을 보면, 컨퍼런스보드 조사는 경기(Business Condition)와 고용(Employment)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현재 상황(Present Situation)과 미래 전망(Expectations) 항목으로 나누어 묻는다. 미래 전망에서는 추가로 수입(Income)에 관해 묻는다. 정리하면 △현재의 경기 △현재의 고용 △6개월 뒤 경기 △6개월 뒤 고용 △6개월 뒤 수입 등 5개의 항목이다. 답변은 3지 선다(좋다, 나쁘다, 보통이다)로 돼있다.
현재의 경기와 고용 사정을 평가한 현재상황지수(Present Situation Index)와 6개월 뒤 상황 변화에 대한 미래기대지수(Expectation Index)를 구한 뒤 이 두 세부 지수를 4:6의 비중으로 종합해 소비자신뢰지수를 산출한다.
구체적인 설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조사는 가계의 재정 상태(Personal Finances)와 경기 상황, 내구재(가전, 가구)에 대한 구매 의향을 묻는다. 현재의 재정상황과 구매 의사를 측정한 현재경제상황지수(Current Economic Conditions)와 미래의 재정과 경기 전망을 평가한 소비자 기대지수(Index of Consumer Expectations)를 종합해 소비자심리지수를 산출한다.
이 조사의 핵심 설문은 다음과 같다.
설문에서 나타나듯 두 조사가 역점을 둔 항목이 서로 다르다. 컨퍼런스보드 조사는 고용 사정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 나온 수치는 취업의 용이도를 나타낸 것으로 미국의 비농업분야 취업인구수와 실업률을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된다. 하지만 고용 지표는 경기 변화에 더디게 움직여 선행지표로서 기능이 떨어진다. 특히 경기 회복 초기에는 보수적 성향의 기업들이 채용을 미루면서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또 소비자들이 6개월 뒤 고용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할만한 근거를 갖기 힘들다는 점에서 소비 심리가 실제 소비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미시간대 조사는 가계가 체감하는 살림 형편의 변화를 중요시하고 있어 소비 여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가전제품의 실제 구매 의향을 물어본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컨퍼런스보드 11월 소비자신뢰지수를 전달과 비교하면 현재상황지수(72.6→72.0)보다 미래기대지수(72.2→69.3)의 하락폭이 더 컸다. 미래기대지수는 지난 8월(89.0) 이후 3개월 만에 20p 가까이 낮아졌다.
미시간대 11월 소비자심리지수의 경우 현재상황지수(89.9→88.0)는 마찬가지로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기대지수(62.5→66.8)는 5개월 만에 반등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기대지수가 두 기관이 발표한 종합지수의 방향을 갈랐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시간대의 소비자 기대지수가 자동차나 주택과 같은 고가의 물품 구입과 상관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미시간대 기대지수는 소매판매 증감에 3~6개월 선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컨퍼런스보드가 경제예측을 위해 만든 경기선행지수 항목에는 놀랍게도(?) 컨퍼런스보드의 기대지수가 아닌 미시간대의 기대지수가 포함돼 있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동행할까
물론 소비자 심리가 좋아진다고 바로 소비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개인의 심리는 그때그때 크고 작은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아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시점의 지수가 아니라 추세다.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 심리와 지출의 상관관계는 높게 나타났다.
지난 23일(현지 시각) 발표된 12월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확정치)는 전달(75.1)보다 큰 폭으로 오른 82.5로 7월 이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 지표 호전과 주식시장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에 힘입어 소비심리 개선 흐름이 뚜렷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날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11월 소비지출은 추수감사절 연휴 등에 힘입어 전달보다 0.5% 늘어나 지난 6월 이후 최대 증가율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오는 31일 오전 10시(현지 시각)에 발표될 컨퍼런스보드 소비자신뢰지수가 뒤늦게 방향을 틀어 상승 대열에 합류할 것인지 주목된다. 시장에선 전달(70.4)보다 크게 오른 77.1 안팎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소비자신뢰지수 어디서 보나
컨퍼런스보드 http://www.conference-board.org/data/consumerconfidence.cfm
브리핑닷컴 http://www.briefing.com/Investor/Calendars/Economic/Releases/conf.htm
* 소비자심리지수 어디서 보나
미시간대 www.sca.isr.umich.edu/data-archive/mine.php
브리핑닷컴 http://www.briefing.com/Investor/Calendars/Economic/Releases/mich.htm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http://research.stlouisfed.org/fred2/series/UMCSENT
* 한국 소비자심리지수 어디서 보나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http://ecos.bok.or.kr/(주제별 9.2 소비자동향조사)
한광덕 기자kdhan@hani.co.kr
미시건대 소비자심리지수 추이
컨퍼런스보드 소비자신뢰지수 추이
1.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경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좋다, 나쁘다, 보통)
2.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일자리 사정이 어떻다고 생각하나(일자리가 많다, 별로 많지 않다, 구하기 어렵다)
3. 6개월 뒤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경기가 어떻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나 (좋아질 것, 나빠질 것, 변화 없을 것)
4. 6개월 뒤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일자리 사정이 어떻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나 (일자리가 늘어날 것, 줄어들 것, 변화 없을 것)
5. 6개월 뒤 당신 가구의 수입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늘어날 것, 줄어들 것, 변화 없을 것)
자료: Consumer Confidence Survey® Technical Note
1. 당신과 동거 가족들의 요즘 살림살이가 1년 전에 비해 나아졌나, 나빠졌나?
2. 당신과 동거 가족들의 살림살이가 1년 뒤에 나아질 것인가, 나빠질 것인가, 변화가 없을 것인가?
3. 앞으로 1년간 미국의 경기가 좋을 것인가, 나쁠 것인가?
4. 앞으로 5년간 미국 경기가 계속해서 좋을 것인가, 실업과 침체에 빠질 것인가?
5. 가구와 냉장고, 오븐, 텔레비전과 같은 가전제품을 사기에 지금이 좋은 시기인가, 나쁜 시기인가?
자료: Surveys of Consumers, University of Mich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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