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매관리자협회가 6월2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발표한 5월 ISM 지수.
미국 경기를 가늠하는 핵심지표 중 하나인 공급관리자협회(Institute for Supply Management, ISM)의 제조업 지수가 2시간 여만에 두 차례나 정정되는 바람에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미 공급관리자협회는 지난 6월2일 오전 10시(현지 시각)에 미국의 5월 ISM 제조업 지수가 53.2%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시장의 예상치(55.5%)를 밑돌았을 뿐 아니라 전달(54.9%)보다 1.7%포인트 후퇴한 수치다. 상승 출발했던 다우지수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하락 반전했다. 제조업 업황을 나타내는 ISM 지수가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것으로 기대했던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것이다. 같은 날 조금 일찍 발표된 시장조사 기관 마킷(Markit)의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확정치가 56.4%로 전달(55.4%)은 물론 예상치(56.2%)를 뛰어넘는 ‘가속’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거의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ISM 제조업 지수의 ‘감속’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구매자관리협회가 같은날 2시간 여 뒤 세번째로 정정한 ISM 지수. 50%=제조업 경제가 성장도 후퇴도 없는 균형점 43.2%=전체 경제가 성장하지도 후퇴하지도 않는 균형점 자료: ISM Report On Business
시장에서 의문을 제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급관리자협회는 자료에 오류가 있었다며 이례적으로 지수를 정정했다. 5월 ISM 지수가 53.2%가 아니라 전월보다 개선된 56.0%라고 수정 발표한 것이다. 다우지수는 빠르게 반등했다. 오후 들어 공급관리자협회는 다시 지수를 55.4%로 하향 조정했다. 처음 발표된 수치보다는 여전히 낫지만 시장의 예상치엔 살짝 못미쳤다. 결국 이날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강보합세로 마감했지만 나스닥지수는 하락하는 등 미국 증시는 혼조세로 장을 마쳤다.
프로그래밍 에러로 계절조정 요인 잘못 입력
2차례의 정정 과정을 통해 ISM 제조업 지수는 증시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실연해보였지만 공급관리자협회의 신뢰는 손상됐다. 협회는 지수에 계절조정(Seasonal Adjustment, SA)요인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컴퓨터로 지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의 에러로 5월이 아닌 4월의 계절조정 수치를 잘못 적용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 시계열 자료는 매년 반복되는 계절적인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월간이나 분기 단위의 자료는 기후·명절·방학 등 여러 요인으로 변동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특정기간의 지표 등락이 계절 요인으로 인한 일시적 변화인지, 순전히 경기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 근본적 변화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주요 경제지표들은 이러한 계절적인 영향을 원 데이터에서 제거하는 계산 과정을 거쳐 발표된다. 과거 5~10년 동안의 데이터를 토대로 경기 순환과는 무관하게 발생한 수치의 변동을 제외하도록 만든 공식을 적용한다.
계절적 변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연말 쇼핑 시즌을 들 수 있다. 다른 달에 비해 크리스마스가 낀 12월에는 쇼핑이 많아진다. 이에 따라 판매가 늘어나면 도소매·운송 부문의 취업자가 늘어 전체 고용 증가에 기여하게 된다. 반면 쇼핑시즌 효과가 사라지는 1월의 소매판매나 고용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12월의 소비지출과 고용의 증가는 계절 요인에 의한 것으로 경기 순환과는 관계없는 일시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기후·명절·방학 등 계절적 요인 제거
학교의 방학도 고용과 실업률에 영향을 준다. 1~2월에는 방학을 맞거나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구직활동이 늘어난다. 이때 취업자가 증가하지만 실업률도 올라간다. 구직 단념자 등 비경제활동인구가 고용시장에 참여하면서 경제활동참가율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개학하는 3월에 실업률은 다시 하락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여름방학 동안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려는 학생들이 급증하다가 8월 중순이 되면 학업에 복귀하면서 고용이 감소한다.
계절성이 뚜렷한 산업으로 자동차 업종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비수기인 7월에 신차 생산을 위한 라인을 정비하기위해 가동을 중단한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계의 고용은 감소하고 산업생산도 함께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수치만 보고 제조업이 침체에 빠진 것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러한 착시를 피하기 위해 자동차 판매는 계절조정 연환산 판매대수(SAAR) 기준으로 파악한다.
‘명절 효과’라 불릴 만큼 설이나 추석 연휴는 경제 지표를 크게 교란시킨다. 설 연휴가 낀 1월이나 2월에는 기업들의 조업일수 감소로 수출이 감소한다. 조업일수 감소는 수입에도 영향을 주지만 설 농수산물 수요가 늘어나 일부 상쇄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무역수지는 흑자폭이 감소하거나 적자로 반전되기도 한다.
명절이 들어있는 달이 다음해에 바뀌면 ‘기저 효과’ 또는 ‘역기저 효과’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설날이 올해는 1월에 있었는데 내년은 2월이다. 내년 2월은 올 2월과 비교해 조업일수가 적어 (전년 동월 대비)수출과 무역수지가 뒷걸음질 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이런 예상은 올해와 내년의 대외 경제 환경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의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서 발표하는 3월 제조업 지수(계절조정 전 PMI)는 춘절이 낀 1~2월보다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열흘 가까이 공장 생산 활동이 중지되는 춘절 효과의 소멸로 주문 회복이나 고용의 증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계절조정 오류 가능성 논란
미 공급관리자협회가 계절조정의 구체 내용을 밝히지 않았고 계절조정 전의 원래 수치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5월이 아닌 4월의 계절조정 계수를 잘못 적용했을 때 ISM 제조업 지수가 낮게 나온 배경을 파악할 길이 없다. 단지 4월에 비해 5월의 계절조정이 후하다는 추론은 할 수 있다. 5월의 성적표에 정상 참작을 많이 해준다는 얘기다. 그만큼 역대 5월의 상황이 안좋았다는 얘기일 수 있다. ‘5월에는 주식을 팔고 떠나라’는 미국 증시 격언처럼.
단순화시켜, 과거 10년간 계절조정 전의 5월 ISM 지수가 4월에 견줘 평균 3%p 낮았다고 가정하자. 만약 올해 5월의 ISM 지수가 4월 대비 2%p 하락했다고 하면 계절조정을 거친 뒤의 5월 ISM 지수는 되레 상승한 것으로 바뀐다.
4월과 5월 사이에 날씨와 연휴 등 계절적으로 특별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계절조정 자체의 편향은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실제 미국에서는 고용 지표 등 경제 통계에 대한 계절조정의 편향이나 오류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2012년 공급관리자협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한 경기 둔화로 기존 계절 조정에 문제가 생겨 이를 수정했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ISM 지수에 내재된 계절조정 오류가 완전히 바로잡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분분하다.
공급관리자협회는 20개의 주요 산업군을 대표하는 400개 회원 기업의 구매 관리자를 대상으로 매달 설문조사를 한다. 해당 산업과 관련된 세부항목들에 대해 나아질 것인지(Better), 나빠질 것인지(Worse), 아니면 변화가 없을 것인지(Same)를 묻고 그 결과를 지수로 만든다. 지수가 50 이상이면 제조업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ISM 지수의 효용이 과대평가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회사 규모에 따른 가중치도 두지 않고, 좋아졌다고 말한 사람과 나빠졌다고 말한 사람의 머릿수를 단순 비교해 절반을 넘으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단한다는 것이다. 실물 지표가 아닌 심리 조사일 뿐인데도 마치 경기 사이클에 대한 대단한 예측도구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는 비판도 있다.
전문가들, 1분기 내내 날씨 탓만
미국의 부진한 경제지표에 대한 계절성 논란은 지난 연말부터 시작해 올 1분기 내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한파와 폭설이 몰아치며 고용, 생산, 판매, 주택 등 거의 전 부문에 걸쳐 차례로 충격이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상 한파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조만간 나아질 것으로 낙관했다. 계절조정이 적용된 뒤에도 비정상적인 수치들이 계속 산출된다면 ‘이상 기후’가 아닌 ‘이상 경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제기됐지만 ‘폭설’에 파묻혔다.
지난 5월29일에는 미국의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정치가 예비치(0.1%)와 예상치(-0.5%)를 크게 밑도는 -1.0%로 발표됐다. 이 역시 이상 기후의 영향으로 풀이됐다.
진짜 날씨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들은 너무 자주 날씨를 비난한다. 곧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한파 타령은 계속되고 있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 미국 ISM 제조업 지수
http://www.ism.ws/ISMReport/MfgROB.cfm?navItemNumber=12942
* 마킷 구매관리자 지수
http://www.markiteconomic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