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3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궁 공보실 제공.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이슬람 수니파 내 패권을 놓고 다퉈온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계개선에 나선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3일 공개된 온라인 비디오에서 다음달 사우디를 방문할 계획임을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영상에서 사우디의 실질적 권력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언급하며 “지금으로선 2월에 그가 나를 만날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약속했고 나는 2월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방문 계획을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이 성사되면, 2017년 7월 이후 4년여 만이다.
두 나라는 이슬람 수니파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 온 라이벌이다. 민주주의 체계를 갖추고 세속주의를 내세우는 터키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자신들이 아랍 민주주의 모델이라 자처해 왔다. 하지만, 폐쇄적 왕정국가인 사우디는 혁명의 움직임을 체제 위협세력으로 보고 철저히 탄압해왔다. 특히 터키는 2018년 10월 사우디 왕가에 비판적인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렀다가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뒤, 사건의 배후에 살만 왕세자가 있다며 강력히 비판해 왔다.
두 나라가 이런 앙숙관계를 털어내고 관계개선 모색에 나선 것은, 최근 중동지역 정세 변화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미국은 최근 대외정책의 무게를 중국 견제로 옮기며 중동지역 주둔 병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또 이란 핵협상이 얼마 전 재개됐지만,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에 있는 등 지역정세의 불안정성이 높다.
터키로서는 최근 통화 리라가 폭락하는 등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석유 부국인 사우디의 도움이 필요하다. 터키는 지난해 11월에도 무함마드 빈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왕세제의 방문을 계기로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터키는 사우디가 2020년 내린 비공식적인 무역금지 조치 해제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우디는 터키가 더는 카슈끄지 살해사건을 끄집어내어 살만 왕세자를 곤란하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동안 터키 언론은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라며 맹비난하는 등 사건 공론화에 앞장서왔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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