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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천안문의마르크스] ① 중국, 마르크스에게 다시 길을 묻다

등록 2006-04-18 19:15수정 2006-04-24 10:18

지배층-민중 모두 ‘자본론’ 펴들지만…
중국에 때 아닌 ‘마르크스’ 붐이 일고 있다.

우선 중국공산당이 최근 대대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연구 강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여기선 ‘사회주의’의 정체성 위기를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통해 극복해보려는 고심의 흔적이 읽힌다. 중국의 기층민중에서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 중국 사회가 ‘초기 자본주의’의 처절함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초기 자본주의’를 분석한 <자본론>의 시각을 통해 중국사회 변혁의 영감을 얻으려 한다.

두 가지의 마르크스 독법은 서로 평행선을 긋고 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는 현시점에서 중국을 가장 예민하게 비쳐주는 프리즘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늘날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을 마르크스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섯 차례에 걸쳐 읽어본다.

지배층 “사회주의 보완 모색” 정체성 위기 극복하려 연구
민중 “현재는 초기 자본주의” 대안 찾으려 읽어

중난하이의 마르크스

지난해 12월16일 리창춘 중국공산당 중앙상무위원(의식형태 담당)은 선전·이론 담당 간부들 앞에서 “당은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무제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보다 앞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는 지난해 11월 당 중앙 집체학습에서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의 구축을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를 중국의 실정에 맞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공산당은 이를 위해 지난해 말 ‘마르크스주의 연구 공정’을 출범시켰다. 1억~2억위안(약 130억~260억원)의 거대한 자금이 들어갈 이 공정에는 3000여명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자들이 참가한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정치학·경제학은 물론, 사회·교육·문화·민족·언어이론 등 전방위적인 연구 성과를 100~150권의 방대한 저작에 담아낼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는 연구원으로 승격됐다.

중난하이, 즉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마르크스를 다시 강조하는 까닭은 ‘사회주의’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1978년 ‘개혁개방’이라는 낱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매우 참신했다. 그러나 오늘날 ‘개혁’은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중국 서민들은 ‘개혁’을 이렇게 비꼰다. “부동산 개혁은 당신의 쌈짓돈까지 빼내가고, 교육 개혁은 당신의 두 노친네를 미치게 만들며, 의료 개혁은 당신을 일찌감치 장례식장으로 보낸다.”

‘개혁’의 빛이 바래진 건 ‘시장경제’에 대한 천박한 이해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그 고양이가 “‘자씨(자본주의)’인지 ‘사씨(사회주의)’인지 묻지 말라”고 외쳤다. ‘묻지마 개혁개방’인 셈이다. 덩은 “애비의 성을 묻지 말라”고 했지만, 중공은 이를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규정해 애비의 성이 ‘사씨’임을 일단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극심한 빈부·도농·지역격차와 환경오염, 에너지 고갈,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중국에서 ‘사씨’는 대체 어디로 갔느냐는 비판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중국공산당의 마르크스 재학습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들에게 마르크스는 어떤 답을 줄 것인가.

낮은 곳의 마르크스

중국에서 관방 마르크스주의는 농담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중국의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치는 ‘정치학’은 ‘필수과목’이지만 80년대 한국 대학가의 ‘국민윤리’만큼이나 인기가 없다. 그러나 중국의 한 구석에선 다시 진지하게 마르크스의 책장을 넘기는 이들이 나타났다. 사회주의 중국에서 ‘새로운 노동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장 노동자들이다.

한 활동가는 “사회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이지만, 이들 또한 <자본론>을 읽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대학 강의실에서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이 어려운 서적을 이들은 왜 진지하게 다시 읽고 있을까.

중국의 한 노동운동 연구자는 “오늘날 중국 사회는 마르크스가 분석한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며 “마르크스의 저작은 중국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참고서적”이라고 말한다.

좌파 인터넷 사이트인 ‘중국공인망’을 운영해온 옌위안장(43)은 “오늘날 중국의 관방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연구가 노동자들의 고통과 눈물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며 “마르크스가 다시 중국에 온다면 중국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으로부터 새로운 <자본론>을 써낼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를 국가 이념의 하나로 삼고 있는 정부에 대항해 마르크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려는 이들에게 마르크스는 또 어떤 답을 줄 것인가.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자오즈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원
“기업가는 착취자 아닌 사회주의 건설자”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중국이 ‘시장경제’를 도입한 뒤 생겨난 문제들에 관해 중국의 관방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12일 오후 베이징에서 만난 자오즈쿠이(56) 중국사회과학원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원 중국마르크스주의연구1부 주임은 ‘마체서용(馬體西用,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서방이론을 활용한다)’이 원리라고 소개했다. 마체서용은 과연 19세기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과 다른 길을 걸을 것인가.

-최근 중국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를 연구원으로 승격시킨 배경은?

=지금까지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를 중국 현실에 맞춰 새롭게 창조해왔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사상이 모두 그런 예이다. 오늘날 또한 새로운 이론 개척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계급투쟁을 통한 무산계급의 혁명에 관한 이론이다. 오늘날 ‘평화발전’을 추구하는 중국의 현실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나?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많은 문제가 인민 내부의 모순으로 변했다. 문화대혁명 때 중국은 인민 내부의 모순을 확대해 계급투쟁으로 해결하려 하는, 극단적 오류를 저질렀다. 중국공산당은 여기서 교훈을 얻어 ‘계급투쟁 확대’의 오류를 경계한다.

-개혁개방 이후 적지 않은 민영기업의 발전에 따라 자본-노동 관계가 생겨났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착취-피착취 관계인가, 아닌가?

=오늘날 중국의 노사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사관계와 다르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민영기업가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건설자’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건설자이지, 착취계급이 아니다.

-중국에 투자한 다국적 외자기업은 어떻게 규정하나?

=외자기업의 중국 투자를 허용한 것은 그들의 선진 경영·관리·생산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해방 전 외국 자본이 중국에 들어와 멋대로 중국 노동자들을 착취한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런 현상이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합법적이다. 이는 중국 사회주의 초기 단계의 특수한 현상이다.

-민영기업을 ‘건설자’로 규정하는 것은 서방 경제학 이론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국의 주류 경제학도 자본가들을 ‘착취자’가 아니라 경영과 관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해내는 건설자로 본다.

=한국의 경제는 구체적으로 분석한 적이 없어 말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잉여가치 생산에 관한 문제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 학설은 노동자들의 ‘살아 있는 노동’이 잉여가치를 생산한다고 보았지만, 변화한 상황 아래서는 새로운 이론의 창신(創新)이 필요하다.

-시장경제의 운용을 위해 중국도 서방경제학의 이론과 학설을 도입하고 있다. 서방경제학설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설이 모순을 일으키지는 않나?

=서방경제학의 일부 이론이 필요하지만, 서방의 주류경제학은 발전도상국에서 실패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남미가 그런 예이다. 중국의 전통 철학은 ‘도(道)’와 ‘술(術)’을 구분한다. 이런 어법을 빌려 설명하자면, 오늘날 중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서방경제학은 ‘술’이지 ‘도’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마체서용(馬體西用)’이라고 표현한다.

네이멍구자치구 저리무멍커쭤중치 출신의 몽골족인 자오 주임은 1973년 공산당에 입당한 뒤 1980년부터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문제 연구에 전념해왔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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