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종교 교리가 아닌 비폭력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병역거부자에게 처음으로 무죄 확정판결을 내린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군인권센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종교적 이유’가 아닌 ‘개인적 신념’으로 현역 군복무를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법원이 첫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성 소수자로서 남성성을 강요하는 획일적 집단문화에 반감을 느끼고 전쟁·폭력 반대 시위에 참여하면서 비폭력·평화주의 양심을 형성한 결과 군대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피고인의 입영 거부 이유를 인정했다. 양심의 자유의 지평을 넓힌 의미 있는 판결이다.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된 것은 명확한 교리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한정됐으나, 올해 초 병무청 대체역심사위원회가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대법원도 지난 2월 같은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에 현역 복무 거부자에 대한 대법원 무죄 판례가 만들어짐으로써 양심적 병역거부를 특정 종교에 한정하지 않고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법적 선례가 모두 갖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본격 시행에 들어간 대체복무제가 완결성을 갖추고 제 궤도에 오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제도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지난해 6월부터 대체역심사위가 설치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인정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지난 4월까지 1208명에게 대체복무가 허용됐는데, 이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경우는 4명뿐이다. 종교가 아닌 개인적 신념에 근거한 병역거부는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셈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대체역심사위도 이들에 대한 대체복무 인정에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길 바란다.
헌재 결정 이후 병무청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고발을 중지했다. 대체복무 심사를 우선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헌재 결정 이전에 고발·기소된 이들이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병역거부의 진정성을 따진다는 명목 아래 문자메시지 내용이나 게임 이용 내역 등 개인정보를 샅샅이 털리고 ‘양심’을 시험하는 괴롭힘 수준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등 여전히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 헌재 결정의 취지에 맞게 이들도 법정이 아닌 대체역심사위에서 대체복무 여부를 심사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사면·복권하거나 특별재심 기회를 주는 게 형평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