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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강아지들의 백종원

등록 2015-09-04 19:06수정 2015-10-26 17:14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동물병원에 오는 아버님들은 대개 ‘모범 보호자’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더 정성으로 키운다. 약을 먹여야 하는 시간도 철저히 지키고, 매주 요일을 정해 목욕을 하는 날도 정해둔다. 하루 한번 산책은 기본이고, 직접 미용을 해주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하늘이 아버님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하늘이와 아버님의 관계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집 안에서는 동물을 키우는 건 상상도 못 하셨던 분이라 딸이 강아지를 처음 데려왔을 때는 당장 갖다버리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항상 아버지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외출 후 돌아올 때도 제일 먼저 반기고, 화장실에 갔을 때도 문 앞을 지키는 하늘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셨다. 대소변 못 가리는 문제도 아버님이 아침저녁 산책시키면서 밖에 나가 용변을 보게 되어 배변 문제가 해결되었다.

한데, 하늘이 아버님이 못 해주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식이조절이었다. 이것저것 먹어서 불어난 하늘이의 체중 때문에 아버님에 대한 가족들의 원성이 높았다. 사과라도 먹으려고 하면 밑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녀석이 안쓰러워 아버님은 식탁 밑으로 슬쩍 한 조각 흘리시는 한결같은 실수(?)를 하신다는 것이다. 아예 식사 때 하늘이는 아버님 의자 밑에 턱 받치고 앉아 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하늘이는 며칠째 구토를 하고 밥을 먹지 않아서 내원했다. 혹시 뭔가 먹은 게 있는지를 묻는 나의 질문에 아버님은 “노, 전혀”라고 하셨지만 검사 결과 하늘이는 급성 췌장염이었다. 알고 보니 며칠 전 먹인 돼지고기가 문제였다. “아휴, 난 몰라. 이런 거 주시지 말라고 했잖아요…” 하는 가족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아, 옛날에는 먹다 남은 밥만 줘도 다 잘 컸는데 참말 유별나게 군다! 그럴 거면 다른 데 줘버려!” 하며 맞받아치던 아버님은 입원실에서 주삿바늘을 꽂고 누워 있는 하늘이를 보신 뒤에 요즘 개들은 왜 이리 허약하냐고 버럭 화를 내시고는 휙 하고 자리를 피하셨다.

다음날 하늘이 아버님은 혼자 면회를 오셨다. 하늘이와 단둘이 있을 때 “에고, 미안하다. 얼른 나아서 집으로 가자” 하시며 미안해하셨다. 그러다 하늘이가 낑낑거리고 안기려고 하자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하늘이가 아버님을 제일 좋아하나 봐요” 하는 말에 하늘이 아버님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게 말이에요. 난 원래 개를 안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얘는 나만 자꾸 따라다녀. 얘가 유난히 이쁜 짓을 해요.”

아버님은 말을 이어갔다. “자꾸 뭘 달라고 애원하는데 어떻게 안 줘. 내가 뭘 먹질 말든가… 그러니까 처음부터 정들지 않게 키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서운한 말과는 다르게 아버님은 하늘이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셨다. 그날은 돌아가는 하늘이 아버님의 뒷모습이 유난히 기운 없어 보였다. 대부분 아버지들은 하늘이 아버님과 유사하다. 살갑게 애정을 표현할 시간도 방법도 모른 채 세월을 지낸 아버지들은 이제 집에 사는 막둥이 강아지들에게 정성을 쏟는다. 동물은 동물이지 하던 선입견도 함께 사는 동안 눈을 마주치고 마음을 나누면서 어느새 녹아 없어진다. 약주 한잔 걸치시고 들어오셔서 제일 먼저 자신도 모르게 인정한 가족의 막둥이를 찾는다. 아버지의 마지막 부양가족인 셈이다.

젊은 시절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할 때는 토끼 같은 자식도 챙겨줄 틈이 없었다. 퇴근길에 사 들고 오는 통닭 한마리가 아버지가 주는 최고의 애정 표현이었으리라. 그래서 내 새끼 입에 먹을 게 들어가는 흐뭇함을 강아지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시면서 느끼시는 것이다. 그 사랑을 사실 누가 말릴쏘냐. 방법이 서툴러도 어렵게 열린 그 마음을 존중해주는 건 가족의 몫이다. “무조건 주지 마세요”가 정답은 아니리라.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하늘이가 퇴원하는 날, 나는 아버님께 ‘하늘이가 먹어도 되는 음식과 조리법’을 적어드렸다. 고기나 빵 대신 고구마나 바나나 등을 달달하게 조리해서 만들어 간식처럼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써두었다. 석달이 지난 지금, 하늘이 아버님은 새로운 조리법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신다. 이번 메뉴는 바나나와 사과를 주스처럼 갈아서 꿀을 살짝 넣은 뒤 얼린 ‘하늘이 셔벗’이었다. “최고예요!” 하는 우리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며 하늘이를 앞장세워 가신다. 백종원 버금가는 하늘이 아버님 만세!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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