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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스텃 아주머니에게

등록 2016-04-29 21:30수정 2016-05-01 10:10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스텃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당신이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년 전 아주머니 코에 살짝 받혀 잠깐 기절했던 한국의 수의사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당신은 54살이 되었겠네요. 캄보디아 몬둘키리(몬돌키리)는 엄청 더울 텐데, 건강은 어떤가요?

지난 4월22일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관광객을 태우며 노예처럼 일하던 코끼리 ‘삼보’가 길에서 사망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 뉴스를 보며 저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숨진 코끼리 ‘삼보’는 40살이었답니다. 70년 이상 살 수 있는 코끼리의 나이를 생각하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거지요.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혹사당한 건지를 알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40대 과로사와 다름없더군요.

저는 당신과 처음 만난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방송 촬영 중이긴 했지만 코끼리를 ‘가축’처럼 키우는 원주민 마을에 간다는 사실로도 전날 잠을 설쳤었죠. 해가 질 무렵 마을 뒷산에서 걸어내려오는 당신의 모습은 코끼리가 아니라 공룡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만난 커다란 코끼리의 모습을 본 그 흥분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스텃 아주머니, 사과를 하고 싶었어요. 그날 아침, 제가 당신의 코에 받혔을 때 사람들은 성격이 나쁜 코끼리라고, 밟히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죠. 저도 좀 당황했어요. 당신을 좋아해서 친한 척한 건데, 까칠하게 코로 받아버릴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저도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 친하게 지내자고 다짜고짜 제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대고 쓰다듬으려 하면 화가 치밀었을 겁니다. 그 생각을 하자 일방적으로 당신에게 내 마음만 들이민 제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제 태도에는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마음만 있고, 당신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었던 거죠. 미안했어요.

‘삼보’가 태우고 다닌 수많은 사람들 역시 코끼리를 학대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코끼리가 귀엽고 착하고 신기하다고 바나나를 주기도 하고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었을 거고요. 어쩌면 대다수가 코끼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동물애호가’였을 수도 있겠죠.

‘동물애호가’ 하면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원에 가기를 좋아하며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일반적인 ‘동물애호가’는 자신이 직접 때리고 괴롭히는 게 아니면 자기가 하는 행동은 학대라고 생각하지 못해요. 사람이 모든 동물의 친구이며 모든 동물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무서운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처럼 말이죠.

또 돌고래를 조련하는 사람들도, 원숭이를 훈련하는 사람들도, 코끼리를 길들이는 사람도 자신은 동물과 ‘교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존중을 담은 착취’일 뿐 ‘교감’은 아니죠. 이기적이고 무서운 생각이에요.

코끼리가 놀랍도록 똑똑하고 감성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스텃 아주머니 역시 그렇게 행복한 생활을 하는 건 아니더군요. 당신을 만날 때까지도 코끼리는 혼자가 아니라 강한 소속감과 가족이라는 정체성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수십년을 사람과 한집에서 살고, 매일 나가서 계곡에서 목욕하고 아프면 밀림에 가도록 외출도 시켜주는 곳에 사는 당신은 조금은 행복한 걸까요…?

코끼리는 사람처럼 다른 코끼리의 감정과 느낌을 감지하며 다치거나 병을 앓고 있는 동료를 동정한다지요. 슬픔과 애도의식은 코끼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삼보’의 동료들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요.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어떤 동물이라도 살아온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죠. 그걸 상상할 수 있다면 마음이 통할 거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동물이 각자의 생을 꾸려나가는 방식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이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겠죠. ‘삼보’가 다음 생에서는 행복한 코끼리로 태어나길 기도합니다. 스텃 아주머니도 건강하세요. 꼭 다시 만나요.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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