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함께 일한 지 10년 된 베테랑 간호사를 포함해 우리 병원 간호사는 7명이다. 동물간호사 제도를 도입한다는 소식에 우리 병원 간호사들이 웃으며 말했다. “원장님, 이번에 수의테크니션 제도가 도입된대요! 저희들 모두 이제 전문인력이 되는 거네요!” 그동안 일부 몰지각한 보호자들에게 동물간호사가 병원 청소나 하고 개똥이나 치우는 일을 하는 걸로만 아는 취급을 당한 게 못내 서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들의 환호에 함께할 수 없었다.
지난 18일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동물간호사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장관은 이를 통해 동물병원 보조인력 3000명이 전문인력으로 양성돼 일자리 증가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4월에 열렸던 ‘수의테크니션(동물간호사)의 제도화에 대한 논의’에서 농식품부는 ‘자가진료’(자기 소유 강아지를 직접 치료하는 행위) 제한을 위한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을 6월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논의 중에 동물간호사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일방적인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동물간호사 제도에 수의사들은 한목소리로 반대서명을 추진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정부 안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그럴듯한 부분이 보이지만, 진료행위에 대한 윤리적인 관점이 빠진 채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수의 테크니션’, 즉 동물간호사의 법적 정의는 ‘동물 진료를 보조하는 자’이지만 정부 안에는 ‘동물병원 시설 안에서’, ‘수의사의 직접 지시 감독하에’ 라는 조건들이 빠져 있어 자가진료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동물간호사가 채혈, 스케일링 등 기초적인 진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한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스케일링이 뭐 어때서? 사람도 치위생사가 스케일링하는데?’라고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동물은 전신마취를 한 상태에서 스케일링을 한다. ‘전신마취’를 한다는 것은 매우 전문적이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진료행위다. 스케일링은 간단하지만 동반되는 마취로 반려동물은 가족을 보지 못하고 시술 중 죽을 수 있다. 대부분의 의료사고는 마취와 관련된 사고다. 이걸 간과하고 동물간호사에게 스케일링을 맡긴다니 어이가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의사법에서 ‘자가진료’가 금지되지 않은 상태다. 반려동물 자가진료 폐지가 되지 않는 한 동물간호사 제도에 대한 논의는 어렵다는 게 수의사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요즘도 얼토당토않게 ‘동물약국’이라는 명목하에 약사가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제멋대로 약을 처방하기도 하고, 항생제나 호르몬제 등을 동물약품으로 구입해서 증상에 끼워맞춰 주사를 놓기도 하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구토라는 한 가지 증상만으로 100가지 이상의 질병을 짐작하고 구토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동물약국에서 보호자의 얘기만으로 판단해서 소화기 관련 약물만 처방한 뒤에 병이 커져서 문제가 되어 병원에 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동물진료가 그렇게 간단히 보호자의 말 몇 마디에 약을 쓱쓱 지어줄 수 있는 일이었다면 뭣하러 수의사가 수의학과에서 6년의 학과 과정과 수년의 수련의 과정을 거쳤겠나?
사람의 경우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 없이 채혈해서 검사하거나 진료행위를 하지 않는다. 자가진료는 더더욱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동물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다. 수의사법 시행령 제12조 3항에는 ‘자가진료’에 대한 조항이 있다. 이것을 악용하여 비전문인이 ‘자가진료’라는 명목으로 함부로 진료하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방송된 동물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번식장의 상황도 이 부분에 속하는 행위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강아지의 배를 열어 제왕절개 수술을 한 상황에서도 불법진료가 아닌 ‘마약류 약물 관련’으로 처벌을 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간호사 제도가 시행된다면, 농장 주인들은 이 제도를 악용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곳곳에서 불법 자가진료로 고통받는 동물이 너무나 많은데, 덜컥 동물간호사 제도만 도입해서 시행한다면?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강아지를 교배하고 사육하는 사람들이 더더욱 신이 날 상황이 될 뿐이다. 난 개인적으로 동물간호사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다. 수의사법 시행령의 자가진료가 폐지되지 않는 한 괴물을 양성할 수 있는 동물간호사 제도는 반대한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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