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삼식이 보호자의 남편이었다. 4살 된 고양이 삼식이의 보호자는 결혼 전부터 우리 병원에 다녔다. 연애기간에도 남자친구와 함께 병원에 온 적이 있었고, 지금은 결혼을 해서 삼식이를 데리고 서울 근교로 이사를 간 지 6개월 정도 됐다. 남편은 전화로 선생님이 아내에게 임신하고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고 하셨냐고 물었다. 난 그렇다고 답했다.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가 고양이 문제로 다툼이 잦다고 했다. 얼마 전 아내가 시어머니에게 유명한 수의사가 고양이랑 임산부랑 같이 살아도 전혀 문제없다고 대들었고, 시어머니는 ‘의사가 키우지 말라고 했는데, 그 수의사가 뭘 안다고 떠드냐’며 큰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삼식이 보호자는 얼마 전 임신이 됐고 가족들과 산부인과에 갔다. 산부인과 의사는 임산부에게 고양이는 좋지 않으니 키우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고양이를 다른 집에 보내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하시는 말이겠거니 하고 흘려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어머니의 압박은 심해졌다. 시어머니는 고양이에게 톡소플라스마 감염이 되면 산모가 유산을 하거나 기형아를 출산한다는 기사를 출력해 남편과 자신에게 보여주면서 삼식이를 당장 다른 데 보내라고 닦달하기도 했다. 삼식이를 이뻐하는 남편도 ‘걱정되기도 하니 아기가 조금 자랄 때까지만 다른 곳에 보내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우선 베란다에서 키우자고 했다고 한다.
삼식이 보호자는 병원에 와서 하소연했다. 삼식이를 보낼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에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겠다며 울었다. 나도 덩달아 울컥해서 ‘티브이에 나오는 수의사’가 임산부가 고양이 키워도 아무 문제 없다고 얘기했다고 큰소리치라고 했다.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도 이상했고, 입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부풀린 기사는 더욱 화가 났다. 결국 그 보호자는 마지막 카드로 시어머니에게 이야기했고 남편이 병원에 전화를 한 것이다.
사실 싱글 남녀가 동물을 키우다가 결혼 후 임신하면서 반려동물을 버리는 일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뉴스에 오르내리는, 동물로 인해 감염이 된다는 비전문적인 뉴스는 사람들의 불안함을 더 자극시킨다. 임신한 상태에서 고양이를 키우면 기형아를 낳거나 유산된다는 얘기는 톡소플라스마 기생충 때문이다. 톡소플라스마 기생충은 고양이가 숙주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로 인해 톡소플라스마가 감염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오히려 날달걀이나 날고기(생선회, 육회) 등을 먹었을 때나 흙이 묻은 채소를 먹거나 정원 가꾸기, 분갈이, 텃밭 가꾸기 등으로 흙이 묻은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었을 때 감염된 경우가 가장 흔하다.
고양이를 통해 사람이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되려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우리집 고양이가 외출을 나가서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새를 잡아먹고 감염이 된다. 그리고 감염된 고양이가 분변에서 기생충 알을 배출하는데, 그 분변을 사람이 먹어서 감염되는 것이다. 이것이 고양이를 통해 사람이 감염되는 경로다. 확률적으로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대부분의 반려고양이는 집 안에서 생활한다. 사료만 먹는 고양이가 대부분이고, 실내에서 상품으로 만들어진 모래가 들어 있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경우가 대다수다. 게다가 고양이의 분변을 맨손으로 만지거나 입에 넣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전무하다.
더욱이 이 기생충 감염은 제주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발병률이 지극히 낮다. 고양이와 오래 살아서 톡소플라스마 항체가 있는 임산부라면 임신 기간 중에 혹시 노출된다고 해도 태아에게 옮기지 않는다.
나는 남편분께 고양이는 임산부와 함께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거듭 설명했다. 걱정되면 삼식이의 톡소플라스마 항체검사를 하자고 말했다. 항체가 있는 고양이는 감염원이 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설득했다. 이후 삼식이 보호자의 식음 전폐와 한 차례의 큰 소동으로 일단 삼식이가 다른 집에 보내지는 것은 보류됐다. 삼식이 보호자는 아기가 태어나면 또 어떤 이유로 삼식이 문제가 거론될까봐 걱정했다. 걸핏하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고양이를 임산부나 신생아의 적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한다. 비과학적인 억측과 강압은 임산부에게 더 치명적이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