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호인과 반려견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동물병원은 명절 연휴가 더 바쁘다. 이번 추석도 예외는 아니다. 7개월 된 리트리버 모모는 소갈비를 훔쳐먹고 응급으로 내원했다. 방사선 촬영을 해보니 뱃속에 네모난 갈비뼈 네댓개가 보였다. 다행히 모모는 덩치가 크고 증상이 없어서 바로 수술하지 않고 강력한 소화제를 처방한 뒤 하루 지켜보기로 했다.
모모의 경우는 음식을 많이 하는 명절 때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사고다. 맛있는 음식이 많다 보니 전을 부치거나 산적을 만드는 중에 훔쳐먹고 탈이 나서 오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나마 모모는 양념이 안 된 갈비였지만 양파를 넣어 양념을 한 음식을 훔쳐먹은 경우에는 심각한 빈혈이나 혈뇨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새봄이의 경우는 좀 달랐다. 얼마 전 5차 접종을 마친 비숑프리제 새봄이는 추석 다음날 밥을 먹지 않고 구토, 설사를 해서 내원했다. 사람 음식을 먹이거나 과식을 시키지 않았다고 가족들은 말했다. 어제까지 잘 놀았는데 밤사이 갑자기 컨디션이 처져 있더니 아침에는 구토와 설사를 한 뒤 밥도 먹지 않아서 파보장염 같은 전염병이 의심된다고 오셨다. 전염병 검사를 했지만 음성이었다. 다른 검사에서도 증상을 나타낼 만한 질병은 찾지 못했다.
새봄이의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추석 당일, 큰집인 새봄이네 집에 친척들이 와서 귀엽다고 하루종일 안고 놀아준 것이 원인이었다. 실제로 새봄이와 같은 경우는 연휴 때 종종 나타나는 일이다. 4개월 된 어린 새봄이에게 낯선 사람들의 지나친 손길이나 놀이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
12살 슈나우저 또랑이도 명절 연휴는 고달프다. 매년 어린 친척들 상대하느라 힘에 부친 또랑이가 여기저기 숨어서 쉬려고 하지만 어린 조카들이 찾아내서 계속 안고 다니고 가만두질 않는다고 매년 푸념을 했다. 결국 올해는 1박2일 동안 또랑이를 다른 곳에 맡겼다.
연휴 동안 병원이나 동물 호텔에서 낯선 생활을 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몰티즈 누리도 매년 명절을 병원에서 지내지만 매번 올 때마다 첫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나마 올해는 당일 저녁부터는 밥을 먹었다. 몇번 왔다고 적응한 걸까. 예민한 아이들은 며칠 동안 밥도 물도 먹지 않고 가족들을 기다리기도 한다.
15살 시추 미미는 요즘 들어 심장병이 심해졌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노령 강아지 미미를 두고 시골로 제사를 가려니 가족들은 심란했다. 고민 끝에 천천히 자동차로 함께 움직이다 결국 힘들어하는 미미 때문에 대전에서 멈춰 다른 가족들은 이동하고, 미미의 언니는 미미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이처럼 동물들이 명절에 겪는 일은 다양하다. 사실 명절 연휴가 동물들에게 그다지 신나는 일은 아니다. 사람들에게도 명절증후군이 있는 것처럼 동물들에게도 ‘명절증후군’이 있다. 명절증후군으로 힘든 사람 챙기기도 힘든데 동물까지 챙기는 게 유별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은 동물 키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겪는 문제다. 유난한 마음이 아니면 아예 동물을 키우지 않는 것이 낫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이런 고려 없이 키우다가 명절 연휴나 휴가 때 처치곤란으로 버려지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연휴 동안 손님이 많이 오는 집이라면 동물들이 쉴 곳을 마련해주자. 낯선 사람들의 지나친 손길은 동물들을 지치게 할 수 있다. 며칠간 집을 비워 동물을 맡겨야 하는 경우에는 가급적 미리 시간을 내어 맡길 장소에 짧은 시간씩 여러 번 맡겨서 적응을 시키는 것이 좋다. 케이지에 가둬두는 곳은 피하자. 생각해보라, 동물들이 자신이 왜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혹은 집에 남겨두고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건강한 고양이는 밥과 물을 아주 넉넉하게 여러 군데 놔두고 환기가 충분히 될 수 있게 창문을 열어둔다면 1박2일 정도는 집에서 혼자 있는 편이 더 낫다. 하지만 강아지의 경우 1박2일이니까 괜찮다고 혼자 뒀다가 빈집에서 밤새 울어 이웃과 마찰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하자.
매년 명절은 돌아온다. 그때마다 동물들은 원치 않는 명절을 보내느라 힘들 테니까. 돌아오는 설 연휴에는 우리집 동물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미리 생각해두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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