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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닭둘기’를 위한 변명 “아무리 유해동물이라지만…”

등록 2015-10-23 19:57수정 2015-10-26 17:11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얼마 전 일이다. 길에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한 아이와 엄마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을 보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엄마, 비둘기한테 먹을 걸 왜 주면 안 돼요?”

“응, 그건 비둘기가 나쁜 새라서 그래.”

“왜 나쁜 새예요?”

“응, 밖에 살아서 더러운 새야. 병균이 많아서 사람한테 무서운 병을 옮긴대.”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 무서워. 저렇게 무서운 새는 다 죽어야겠네요.”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비둘기를 향해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하더니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 동네 꼬마들이 떠올랐다. 가끔 동네 꼬마들이 길에서 다친 동물을 주워 동물병원에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다. 몇년 전까지 다친 비둘기와 까치는 아이들이 데려오는 단골 환자였다. 주로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고 푸드덕대다가 잡혀 오는데, 사실 다친 비둘기나 까치는 동물병원에 와도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 오히려 새들 입장에서는 이런 강제입원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눈망울과 고사리손이 기특해서 차마 거절을 못 했다. 입원시킨 뒤 아이들이 비둘기 환자를 면회하고 돌아가면, 대부분은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고 비둘기를 다시 보내주곤 했다. 너무 많이 다쳐서 살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경우에는 다음날 면회 온 아이들에게 다 나아서 날아갔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내 어린 시절에는 비둘기는 나쁜 새가 아니었다. 평화의 상징이었다. 공원에서 모여드는 비둘기를 만나면 먹이를 주고 좋아했다. 지금은 도심을 휘젓고 다니는 천덕꾸러기 ‘닭둘기’가 되었다. 극혐의 대상이자 애물단지 닭둘기는 2009년부터 유해동물로 지정되었다. 비둘기 외에도 현재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된 동물은 고라니, 멧돼지, 청솔모, 참새, 까치 등이다.

사실 산에 사는 산비둘기들은 유해동물이 아니다. 도시에 사는 집비둘기만 유해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야생동물이 아닌 집비둘기를 유해동물로 만든 것은 사람이다. 도심에만 국부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각종 행사 때마다 비둘기 수백마리를 하늘에 날리며 평화를 알리더니 늘어난 비둘기 수로 여러 피해가 생기면서 비둘기는 유해동물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비둘기가 어쨌든 유해동물이니 ‘제거 대상’ 혹은 ‘존재하면 안 되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오해다. 비둘기를 죽이는 것은 위법이다. 서울시 허가 없이는 안 된다. 아직 시에서 그것을 허가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우리는 비둘기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안내문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에서도 비둘기에 대한 변명을 해줘야 한다. 달랑 현수막이나 안내문만 걸어두고 비둘기를 우리 지역에서 내몰아야 하는 대상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불임사료를 줘서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법을 택했다. 스위스에서는 알을 수거하고 가짜 알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비둘기 개체수를 조절한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비둘기 개체수 조절을 위해 공원마다 대형 비둘기집을 설치하는 방법을 쓴다. 200마리 이상의 비둘기를 수용할 수 있는 둥지를 수십 군데에 만들고 거기에 알을 낳을 때마다 찾아서 없애거나 둥지를 흔들어 부화하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식이다. 모두 비둘기를 도심에서 쫓아내자는 뜻이 아니라 수를 줄이는 게 목표라는 게 그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눈에 거슬리니 없애자는 식의 극단적인 방법은 너무 쉽고 가볍다. 생명을 대하는 가벼움은 이런 문제를 만든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반성도 없게 만든다. 거슬린다고 없애다가는 사람만 남게 될 수도 있다. 비둘기도 시간이 지나면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도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역 내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비둘기가 우리 동네 비둘기가 될 수 있게, 고양이도 유해동물 취급을 받지 않게.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그래서 꼬맹이들이 동네에서 함께 동물들을 살피고, 가끔은 그 고사리손으로 다리 부러진 비둘기를 안고 병원에 오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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