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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무섭지 않게

등록 2015-11-20 20:37수정 2015-11-21 13:49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얼마 전에 병원에 가서 위 내시경을 받은 적이 있다. 수면내시경을 하기 위해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혈관카테터(약제 등을 주입하는 관)를 잡고 침대에 누웠는데 커튼 너머 검사실 안쪽에서 진료진끼리 투덜투덜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냐, 또 검사가 있어?” “원장님이 직접 보신다고 잡으신 거예요.” “아니, 원장님이 잡으면 다야….” “어휴, 차오른다. 차올라.”

나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입 밖으로 “저 다음에 해도 돼요”라고 할까, 아님 커튼을 열고 ‘여기 환자가 있는데 너무들 하시네요’라고 할까 고민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뒤로 또 다른 환자의 내시경 검사가 들어왔고, 나를 향하던 원망은 그 환자에게 돌아갔지만 검사실 안은 더욱 짜증나는 공기로 차올랐다.

커튼을 열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입에 마우스피스를 끼우며 빠른 스피드로 설명하는 간호사의 아무런 배려도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동작에 나는 무서워졌다. “마우스피스를 너무 꽉 무시면 치아를 다칠 수 있습니다.” 간호사는 커튼을 반쯤 닫은 채 사라졌다. 심장은 쿵쿵 뛰고 공포심이 몰려왔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때, 지나가던 어떤 간호사가 미소를 띤 얼굴로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잠깐이면 되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곧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별거 아닌 한마디에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내 불안함을 어떻게 알았을까. 동공이 커진 눈 때문이었을까, 아님 뻣뻣해진 채 긴장된 내 몸 때문이었을까. 말은 못 했는데 말이다.

사람과 동물은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하지만 동물은 몸짓이나 자세로 소통을 한다. 우리의 사소한 행동이나 동작 하나가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에게 위협과 두려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입장을 바꿔보면 우리는 동물들이 전하려는 의사는 하나도 못 알아듣는 셈이다. 더구나 몸짓으로 소통하는 동물들은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관찰하며 해석하고 있을 텐데,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에게 마구잡이로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의료인에겐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일이 환자에게는 특별한 일이다. 나는 내가 병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우리 병원에 오는 동물들도 나와 같은 감정이었으리라. 마우스피스를 물고 말 못 하는 나와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우리 병원에 다니던 고집 센 할아버지 요크셔 똘똘이가 이사를 간 뒤에 경련으로 쓰러져 가까운 병원에 응급으로 간 일이 있었다. 입원한 병원에서 응급처치로 경련은 멎었는데 신경증상이 나타나 멎지를 않는다고 가족들이 울면서 전화가 왔다. 진정제를 맞아도 다시 신경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통화를 해보니, 똘똘이가 갇혀 있기 싫다고 쉬지 않고 짖는 거였다. 유난히 고집이 센 성격에 가족들이 늘 받아주던 편이라 예전에 우리 병원을 다닐 때도 입원할 때면 갇혀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소리쳐서 수액을 맞을 때 누군가 옆에 있어야 했고, 안아달라고 계속 소리쳐서 우리가 안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평소에도 반복적으로 짖는 편이라 충분히 질병적인 증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똘똘이의 성격이나 특징, 평소의 반응을 모르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으리라.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저자
우리도 동물도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한 공간에 있지만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의사표현에 관심을 기울여줄 필요가 있다. 병원에 갔을 때 충분히 자기가 키우는 동물이 어떤 성격인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특징이나 평소의 반응을 함께 설명해주자. 입원할 때 안정을 느낄 수 있게 평소 쓰던 밥그릇을 함께 가져가거나 담요나 쿠션을 챙겨서 가져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단, 사람의 시각에서 감정을 이입해서 동물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 동물들은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니 그들의 언어를 공부하고 연습하는 것이 우선이다. 평소에 가족들 주변에서 동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들의 움직임이나 몸짓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집에서도 낯선 병원에서도 그들은 좀더 평안할 것이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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