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엄마! 머리 뒤에 그거 뭐야? 얼른 빼.”
반짝이 머리핀을 뒤에 생뚱맞게 꽂은 엄마를 보고 나는 식겁하며 말했다. 머쓱해하며 머리핀을 빼든 엄마는 좀 있다가 다시 머리에 핀을 꽂더니 모르면 상관 말라며 팽 하고 방으로 가버렸다.
방에 들어가보니 엄마가 옷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한참 동안 고민하고 있었다. 내일 외출하는데 뭘 어떻게 맞춰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렇게 옷을 들고 있는 엄마의 뒷머리가 휑한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숱이 없어진 뒤통수를 가리고 싶어 자꾸 핀을 꽂은 거였구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병원에 함께 사는 ‘꼬모쟁이’가 떠올랐다.
꼬모쟁이는 열네댓살 남짓 된 페키니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9년 전 병원으로 스스로 걸어들어왔다. 턱이 살짝 부러졌다가 붙은 탓인지 혀가 유난히 길게 나온 것 외엔 건강했고, 워낙 귀엽게 생겨서 인기가 많았다. 손님들이 오면 늘 촉촉한 눈을 깜박거리며 빤히 쳐다봤다. “어머~ 너무 귀엽다” 혹은 “아~ 꼬모, 이쁘네!”를 듣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올리브에 9년 동안 있으면서 꼬모쟁이는 늘 공주였다. 자기보다 이쁨받는 아이의 꼴을 못 봤다. 그런 경우에는 어김없이 쫓아가 자기를 어필하고 다른 강아지를 찍어누르는 못된 심보의 공주였다. 그렇게 꼬모쟁이는 늘 자신이 제일 이쁨받아야 직성이 풀렸다. 젊은 시절 꼬모는 자기가 제일 예쁜 줄 아는 ‘질투의 화신’, ‘자존심이 강하고 요구사항이 확실한 아이’였다.
9년이 흘렀고 꼬모도 늙었다. 몇년 전 한쪽 눈을 다치고 난 뒤 짝짝이 눈이 되었다. 뽀얗던 털 색깔이 점점 누렇게 변했다. 촉촉하던 코도 갈라져 볼품이 없어졌다. 낯선 손님들에게 꼬모쟁이는 더이상 이쁜 강아지가 아니었다. 이쁘다는 말보다는 “어머! 얘는 혀가 왜 이렇게 길어!” 하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느낌으로 자기를 이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강아지들도 안다. 점점 병원 일층보다는 익숙한 우리들이 있는 이층 처치실과 진료실에 올라와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하루의 대부분을 잠만 잤다.
어느 날부터인가 꼬모쟁이는 유난히 많이 짖었다. 한번은 진료실 앞에 앉아서 진료를 보는 우리들에게 자기를 안고 내려가라고 짖었다.
“꼬모쟁이! 자꾸 이럴래. 우리 바쁜 거 안 보여?”
일층으로 가라고 내려보내는데 꼬모쟁이의 머뭇거림이 좀 이상했다. 꼬모쟁이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아닌 척했지만 사실은 계단을 내려가는 게 무서웠던 거였다.
반려동물은 우리보다 먼저 늙는다. 말을 못 알아듣고 때아닌 행동을 한다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신체적 변화가 왔을 수도 있다. 노화는 시간에 의존한 신체의 변화들이 무수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불편이나 통증이 빈발한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 늙는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질병’을 우리는 안고 태어난다. 젊고 활기찬 시절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좋든 싫든 나이가 드는 것을 몸으로 겪는다. 무너지기 시작하는 몸을 받아들이기도 버거워지고,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 존재를 이어가는 것 외에는 흥미나 열정을 잃게 된다. 결국 신체의 변화에 따른 심리적 변화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나의 가족 혹은 나이 든 반려동물이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지금 ‘노화’에 버거워 그런 거라 생각해주자. 엄마의 짜증과 잦은 삐침이나, 꼬모의 투정은 모두 나이 드는 걸 버티는 중이라는 걸 알리는 신호였다. 늙는 게 ‘벌’은 아니다. 누구나 겪고 버티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 늙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주눅드는 걸 막을 수는 있다.
가족은 그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을 나누는 힘이 있다. 우리 꼬모쟁이가 상큼했던 시절처럼, 울 엄마의 이쁜 아줌마 시절처럼 그 시간을 기억하고 나눌 수 있는 가족만이 주눅들지 않게 해줄 수 있다.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도 함께한 시간은 변함없을 테니 말이다. 더 이쁘고 더 괜찮은 강아지가 있지만 그래도 울 꼬모쟁이가 제일 이뻐 보이는 건 9년을 함께한 눈물과 웃음, 힘든 시간을 버텨준 고마움 때문이다.
당당하게 늙어가게 도와주는 건 어떨까. 힘들어서 부리는 투정을 우리 아니면 누가 받아주겠는가. 우린 가족이다. 오늘 퇴근하면 울 엄마를 이쁜 할머니로 만들어줄 염색약과 머리핀을 사야겠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저자
젊었을 적의 꼬모.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제공
늙은 지금 모습의 꼬모.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제공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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