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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우리 집 바퀴벌레가…

등록 2016-01-08 19:58수정 2016-01-09 15:55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따르르릉. “네, 동물병원입니다.” “큰일 났어요! 저희 집 바퀴벌레가 쓰러졌어요!”

다급한 말투로 소리치는 목소리 너머로 큭큭거리며 웃음을 참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바퀴벌레는 진료를 보지 않는다고 했지만 신이 난 아이들은 바퀴벌레는 생명이 아니냐며 자기 집의 귀한 가족이라고 되받아쳤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바로 내원하시구요. 예상 진료비용은 검사 및 응급처치비 포함 50만원입니다. 수술을 하게 된다면 100만원 이상 예상하셔야 할 겁니다. 사망할 경우 장례비도 들 거구요. 보호자분 연락처와 바퀴벌레 이름 알려주시면 예약해드리겠…” 하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옆에서 듣던 선생님이 깔깔 웃으며 진짜 올 수도 있다고 하는 농담에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 닭도 건강검진을 하시나요?” 처음엔 장난전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닭이 왔다. 아저씨의 품에 안겨 왔고, ‘수탁이’와 함께 산 지 7년이 된 아저씨는 요즈음 들어 기운이 없는 것 같다고 건강검진을 원했다. 암튼 그 닭의 검사를 위해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닭이 그렇게 힘이 센 줄 몰랐다. 화가 난 ‘환자 닭’은 푸드덕거리며 머리를 쪼았다. 그때 이후 나는 종종 닭도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어디까지가 반려동물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요즘 티브이에 동물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다. 개나 고양이가 아닌 낯선 동물과의 동거는 관심이 모아진다. 집에서 거북이를 키우고, 이구아나와 라쿤을 키우고, 사막여우를 키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낯선 존재와 살고 싶어한다. 닭이든 라쿤이든 하다못해 바퀴벌레든 뭐든 내가 키우면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반려동물이다 아니다를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어려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수탁이’처럼 함께 십수년을 살아간다면 반려동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치킨으로만 생각하던 닭이 주인을 알고 산책도 하고 같이 잠도 잔다, 감정 표현도 한다는 부분을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에겐 치킨인 닭이 누군가에겐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진화하면서 유전자가 바뀌었다. 그런데 인간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 않은 동물이 반려동물이라 할 수 있을까? 유전자가 바뀌는 데엔 진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동물의 전형적인 행동이 개처럼 사람과 교감하는 쪽으로 진화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동물은 개와 고양이밖에 없다. 물론 수천년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르게 진화하는 반려동물이 생길지는 모르겠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동물의 입장에서 어떤 공간에서 살며, 어떤 삶의 형태로 사는 게 가장 행복할까? 미국의 법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동물권을 설명하면서 ‘번성’(flourishing)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동물이 번성할 수 있는 공간에서 사는 게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개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좋고,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사는 게 좋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흔히 키우는 이구아나, 거북이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취향이나 정서를 위해 밀림에 살아야 할 이구아나가 잡혀와 번식장에서 사육되고 거북이는 욕조만한 수조나 대야에서 사육된다.

제돌이를 방사해야 한다고 할 때 ‘돌고래 엄마’라고 불리는 사육사를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제돌이는 여기에서 우리가 사랑해주는데 왜 방사를 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살아왔으니 바다로 돌아가면 위험해질 거라며 걱정했다. 사람들은 ‘내가 사랑해주니까 행복하지 않겠나’라는 식으로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원래 있어야 할 세계인 야생에서 데리고 와 사람 옆에 두면서 우리는 그 동물에게 행복과 교감을 요구한다.

또한 인간을 위해 의도적으로 생산되는 동물을 키우는 건 동물착취체제의 공범이 될 수 있다. 반려동물이라며 아무 동물이나 키우고, 그런 행동이 사회에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면? 사람도 동물도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어 수탁이처럼 닭을 키우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면, 닭 공장에서는 아마도 사육용 닭을 대량 생산해 팔 것이다. 유기닭도 생길 거고 보호시설이 필요할지 모른다. 반려관계는 어느 동물과도 맺을 수 있다. 닭이나 라쿤을 키워도 반려관계는 생기겠지만 개체와 개체의 관계일 뿐 종으로서의 ‘반려동물’은 아니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저자
반려관계를 맺는 것과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별개다. 동물이 행복하지 않다면, 나로 인해 불행한 환경에서 숨죽인다면, 그런 동물이 많아진다면, 이기심과 호기심으로 동물을 희생시키는 거다. 또다른 학대이고 착취다. 반려동물의 자격이 있냐 없냐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는 건 아닐까.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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