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5~6년 전이었다. 고양이 발톱 제거 수술을 해 달라는 보호자가 있었다. 강남에서도 할 수 있지만 믿을 만한 수의사에게 맡기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그분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캣타워나 스크래처를 사주라고 돌려보냈다. 그 보호자는 다시 찾아와 발톱을 제거해 달라고 했다. 가구를 하도 긁어대서 집이 엉망이 되었다며 이러다 고양이를 파양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보호자에게 진심으로 파양을 권했다. 아직도 난 그때 건넨 충고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발톱을 제거하려면 발가락의 마지막 관절을 절단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사람의 손가락에서 첫 번째 관절 마디를 몽땅 자르는 것과 같다. 레이저로 발톱을 제거하는 수술도 마찬가지다. 부작용이나 통증, 출혈은 적을지 몰라도 발톱을 제거한다는 사실은 똑같다. 고양이 발톱 제거 수술은 영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스위스·스웨덴·스페인 등 대다수 유럽 국가에서 법으로 엄격히 금지한다. 미국에서도 질병 때문이 아니면 좀처럼 하지 않는다. 요즘은 레이저로 발톱을 내미는 신경을 손상시켜 스크래치를 못하게 하는 수술이 유행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수술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 병원에는 10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고 있다. 병원 곳곳 벽지들은 뜯겨 있다. 제일 아래층 당직실과 4진료실은 심각할 지경이다. 보호자들이 보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벽지도 갈아보고 혼내도 봤지만 변함없이 그곳은 최고의 스크래치 장소가 되었다. 결국 벽 모서리에 밧줄로 된 판을 붙여주어 긁기 편하게 해주었다. 다음에 병원 인테리어를 할 때는 벽지를 바르지 말고 다른 방법을 택하자고 마음을 먹기도 했다.
고양이의 스크래치는 본능이다. 고양이는 발톱의 바깥 껍데기를 벗겨내 속에 있는 날카로운 부분이 드러나게 한다. 이는 ‘영역 표시’이기도 하다. 고양이는 긁은 표시와 냄새로 자신의 영역을 나타낸다. 소변으로 영역 표시하는 것과 같다. 스크래치를 할 때마다 고양이의 발바닥 사이에 있는 분비샘에서 나오는 분비물로 냄새를 남긴다. 불안함을 스크래치로 해소하기도 한다. 이는 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다.
소파 등의 가구를 긁지 않도록 ‘긁을 수 있는 다른 것’을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양이의 공간을 구분해서, 쉬거나 잠자는 곳 근처에 스크래처 판이나 기둥을 만들어주고 맘껏 스크래치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주자. 만약 가구를 긁고 있다면 그 위에 긁지 못하도록 은박지를 덮어두거나 물건으로 가려두면 좋다. 대신 그 옆에 스크래처를 두자. 고양이는 어차피 혼내서 가르칠 수 없다. 이미 긁고 있는 공간을 불편하게 만들어 다른 데로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동물과 함께 살기는 매우 불편한 일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 아이를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주변을 떠올려보자. 어린 아기가 있는 집이라면 어디든 어수선하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 벽에 그려진 낙서, 바닥에 깔린 매트, 여기저기 널린 잡동사니들은 치워도 정리가 안 된다. 소파고 식탁이고 펜만 들면 그림을 그리는 통에 아이보리 소파는 꿈도 못 꾼다. 냉장고 문짝에 매달려 철봉놀이를 하는 친구 아이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동물과의 동거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고양이는 날아다니듯 여기저기 올라다닌다. 냉장고 위도 책꽂이 위도 거뜬히 올라간다.
화분에 있는 화초도 수시로 보살펴주고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 제자리에 있는 식물도 키우기 까다로운데 동물은 오죽할까. 키우기 전에 불편함을 충분히 상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번거롭고 불편한 것이 싫다면 동물 가족이 되려고 시도하지 말자. 동물 대신 이쁜 동물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감상하는 쪽을 추천한다. 주말마다 귀여운 강아지들이나 고양이가 있는 카페에 가서 마음껏 쓰다듬어주는 편이 낫다. 마음먹고 동물단체에 가서 주말에 봉사해보는 것으로 발전한다면 더욱 좋고.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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