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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소중한 누군가를 잃기 전에 ‘빨리빨리’ 주술 벗어나야지

등록 2007-07-09 18:47

나의 자유 이야기 /

아버지가 느려지셨다. 아버지는 항상 빠르게 움직였고 느린 걸 못 견뎌 하셨다. 진득하게 앉아 잡담을 하거나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절도 있고 빠르게’가 아버지가 살아가는 방식인 듯했다. 당연히 새마을 열차나 고속철도(KTX) 열차를 타고 와서 볼 일을 마치면 급히 내려가시곤 했다. 나는 아버지가 완행열차 같은 건 절대로 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달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무궁화 열차를 타고 오셨다고 한다. 케이티엑스보다 두 배는 족히 느린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아버지는 ‘느림’을 어떻게 견뎌내신 걸까?

지난겨울 어머니가 소천하신 뒤로 아버지의 서울 나들이가 잦아졌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아버지는 그렇게 메우고 계셨다. 바쁘다는 이유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나마 채워가고 계신 듯했다. 집안 조카들 결혼식이며 친구 생일을 직접 챙기고, 아는 분이 주관하는 무슨 궐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굳이 상경하시기도 했다. 밥집 하는 막내 고모를 보러 종로에도 들르셨고 우리 집에도 들러 며칠 머물다 가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조조할인 영화를 보고, 영화관 위층의 대형 마트에서 함께 장도 보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쇼핑 카트를 천천히 움직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했는데, 서두르지 않는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 걸음이 빠르고 성미가 급하다. 무슨 일이든 빨리 마무리하기를 좋아한다. 좀더 빨리 뭔가 많이 이루어야 제대로 사는 것 같은 ‘빨리빨리’의 주술에 걸려 나 자신을 들볶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도 아까울 때가 있다. 나도 시간을 내어 아버지처럼 느린 열차를 타봐야 할 것 같다. 누군가를 잃고 나서 느려지기엔, 삶이 너무 소중하고 사람들은 너무 귀하다. 느린 열차에 몸을 싣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봐야겠다,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그러다 조금 지루해지면 미하엘 엔데의 오래된 소설을 꺼내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현재를 얻고 사람들을 얻으라던 그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봐야겠다. 완행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시계를 풀어놓고 ‘모모’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들어주고 싶다.

이미화/경기도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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