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에서 사형제도의 유용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사진은 교도소에 설치된 교수형 집행기구. <한겨레> 자료사진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1764년, 약관 26세의 이탈리아 청년이 쓴 작은 책이 당시 계몽주의의 물결을 타고 있던 유럽 전역의 지성계를 뒤흔들었다. 특히 그 책이 1766년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나오자마자 그곳 지식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자 열광적이었다. 볼테르는 그 책을 ‘인권장전’이라고 극찬했다. 그 책은 또한 당시 계몽군주들에게 법제 개혁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 작고도 ‘큰’ 책이 바로 체자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이다. 베카리아는 계몽의 정신이 유럽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장족의 발전을 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형벌의 잔혹성과 형사절차의 불규칙성을 연구하고 이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의 책은 형벌의 기원에서부터 법률의 해석, 증인과 선서의 문제 그리고 밀수입과 결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 압권은 단연 사형에 관한 장이다. 베카리아는 “사형은 사회안전과 선량한 사회질서를 위해 과연 유용하고 없어서는 안 될 형벌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한 개인을 제재하는 게 아니라 말살하고자 하는 사형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전쟁행위라고 보고, “사형이 무용하고 불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면, 나는 인간성을 위한 승리를 획득한 셈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우선 그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사형이 범죄 억제책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논증한다. 인간의 의식에 큰 효과를 끼치는 것은 형벌의 강도가 아니라 지속도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형은 사람들에게 야만성의 실례를 보여주는 까닭에 유해하다. 그는 “전쟁의 격정과 필요성이 사람들에게 유혈을 가르쳤다고 한다면”, 사형이라는 “법적 살인은 상당한 연구와 격식을 갖추고 집행되는 까닭에 훨씬 더 유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형제는 무용할 뿐 아니라, 국민 의식에도 몹시 해로운 것이라는 말이다. 사형제의 불필요성에 대해서 베카리아는 “어느 누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를 타인에게 위임하기를 원했겠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인간은 타인의 생명에 대해 어떤 권리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주장의 철학적 배경이다. 전자는 사회계약설에 바탕을 둔 물음이고, 후자는 ‘인간은 상대적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한 주장이다. 아직 젊은 나이였던 베카리아는 자신의 책에서 후자의 논지를 깊이 있게 밀고 나가지 못하지만, 줄 사이를 읽는 혜안으로 그의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론 전개가 개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베카리아는 사람의 목숨을 관장하는 것은 우주를 지배하는 필연적인 자연법칙이거나 아니면 신의 권리라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이는 절대적인 것이다. 반면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다. 상대적인 존재란 무엇을 하든 완벽하지 않고 완결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사형은 다른 형벌과 달리 한번 집행하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형이다. 따라서 전적으로 오판의 여지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만 사형이 과해져야 하는데, 인간은 무오류의 존재일 수 없기 때문에 사형을 과할 정도의 충분한 확실성은 결코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사실 현대의 사형폐지론도 이 논리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누가 자신의 생명을 뺏을 권리를 타인에게 위임하기를 원하는가?
인간은 수정이 필요한 존재다 사형은 수정 가능성을 배제한다.
형벌 제도에 관한 베카리아의 입장을 배태하고 있는 철학은 한 마디로 ‘인간은 수정을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형은 수정의 결과를 적용할 가능성을 미리 배제한다. 이는 또한 평등의 차원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오류의 가능성에서도 평등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 때 이단을 심판하던 종교재판소의 판사처럼 절대성을 스스로 담보하는 오만과 신성모독을 저지르지 않는 한, 모든 판결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형제는 범죄자에 대한 편견을 재판관의 오만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결국 베카리아는 절대 진리만이 지닐 수 있는 힘을 가장해 가장 냉혈적인 야만성을 공공연하게 자행하는 무제한적인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법이 자연법칙이나 신의 계시와 같은 절대 권리를 가장하는 데 대한 경고이다. 사형은 전혀 효율적이지 못한 까닭에 무용하며, 상대적 존재인 인간이 행사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인간성의 수호자 베카리아가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1764년, 약관 26세의 이탈리아 청년이 쓴 작은 책이 당시 계몽주의의 물결을 타고 있던 유럽 전역의 지성계를 뒤흔들었다. 특히 그 책이 1766년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나오자마자 그곳 지식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자 열광적이었다. 볼테르는 그 책을 ‘인권장전’이라고 극찬했다. 그 책은 또한 당시 계몽군주들에게 법제 개혁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 작고도 ‘큰’ 책이 바로 체자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이다. 베카리아는 계몽의 정신이 유럽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장족의 발전을 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형벌의 잔혹성과 형사절차의 불규칙성을 연구하고 이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의 책은 형벌의 기원에서부터 법률의 해석, 증인과 선서의 문제 그리고 밀수입과 결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 압권은 단연 사형에 관한 장이다. 베카리아는 “사형은 사회안전과 선량한 사회질서를 위해 과연 유용하고 없어서는 안 될 형벌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한 개인을 제재하는 게 아니라 말살하고자 하는 사형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전쟁행위라고 보고, “사형이 무용하고 불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면, 나는 인간성을 위한 승리를 획득한 셈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우선 그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사형이 범죄 억제책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논증한다. 인간의 의식에 큰 효과를 끼치는 것은 형벌의 강도가 아니라 지속도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형은 사람들에게 야만성의 실례를 보여주는 까닭에 유해하다. 그는 “전쟁의 격정과 필요성이 사람들에게 유혈을 가르쳤다고 한다면”, 사형이라는 “법적 살인은 상당한 연구와 격식을 갖추고 집행되는 까닭에 훨씬 더 유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형제는 무용할 뿐 아니라, 국민 의식에도 몹시 해로운 것이라는 말이다. 사형제의 불필요성에 대해서 베카리아는 “어느 누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를 타인에게 위임하기를 원했겠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인간은 타인의 생명에 대해 어떤 권리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주장의 철학적 배경이다. 전자는 사회계약설에 바탕을 둔 물음이고, 후자는 ‘인간은 상대적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한 주장이다. 아직 젊은 나이였던 베카리아는 자신의 책에서 후자의 논지를 깊이 있게 밀고 나가지 못하지만, 줄 사이를 읽는 혜안으로 그의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론 전개가 개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베카리아는 사람의 목숨을 관장하는 것은 우주를 지배하는 필연적인 자연법칙이거나 아니면 신의 권리라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이는 절대적인 것이다. 반면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다. 상대적인 존재란 무엇을 하든 완벽하지 않고 완결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사형은 다른 형벌과 달리 한번 집행하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형이다. 따라서 전적으로 오판의 여지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만 사형이 과해져야 하는데, 인간은 무오류의 존재일 수 없기 때문에 사형을 과할 정도의 충분한 확실성은 결코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사실 현대의 사형폐지론도 이 논리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누가 자신의 생명을 뺏을 권리를 타인에게 위임하기를 원하는가?
인간은 수정이 필요한 존재다 사형은 수정 가능성을 배제한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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