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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김용석의고전으로철학하기] 바른통치 위해 ‘주먹 꽉~ 쥔’ 철인왕

등록 2006-04-16 16:01수정 2006-04-17 13:58

로마 캄파돌리오 광장에 있는 아우렐리우스 청동 기마상
로마 캄파돌리오 광장에 있는 아우렐리우스 청동 기마상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도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에 비하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은 만물의 실체와 원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들 모두 세상을 관장하는 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염려하고, 얼마나 많은 것의 노예였던가?”

로마 제국의 다섯 훌륭한 황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년)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그는 이 작품에 담긴 철학적 명상으로 인해 이른바 ‘철인-왕’ 또는 ‘철학자-황제’의 모델로 여겨지기도 한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철학자들이 왕으로서 다스리던가, 아니면 왕이나 최고 권력자들이 진지하게 철학을 하든가 해서 정치 권력과 철학이 합쳐지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악으로부터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이래, 철인왕은 통치의 이상형이 되어 왔다.

플라톤의 철인왕 개념은 단순히 철학 정신과 통치술의 결합이라는 것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심도 있는 성찰을 요구한다. 아우렐리우스도 <명상록>에서 이 점을 반복적으로 성찰한다. 다른 한편 황제가 되어 정치의 현실에 뛰어든 그는 “철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도 허튼 명예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인정한다. 세속에 물든 자신이 철학자라는 명성을 얻기는 이미 쉽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렐리우스의 삶과 정신은 철학적이지 않은 적이 없다. 이는 그가 어릴 때부터 최적의 교육 환경에서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처하는 그의 진지하고 치열한 자세 때문이다.

그의 선대 황제인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재위 기간 동안 로마 제국은 평화롭고 번영의 절정에 있었다. 반면 아우렐리우스의 통치 기간 동안 제국은 자연 재해를 비롯한 온갖 재난에 시달렸다. 황제는 명민했지만 제국이 그 번영의 정점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북부 국경에서는 게르마니 인들의 침입이 잦았고, 브리타니아 주둔 로마 군단에선 폭동 사태가 있었으며, 제국의 동방에서는 정치·군사적 불안 상태가 계속되었다. 황제 자신도 재위 마지막 10년을 로마 밖의 원정지에서 보냈다. 바로 이 시기에 틈틈이 개인적 성찰을 기록한 결과가 <명상록>인 것이다.

네 기본 원칙을 적용할 때
격투기 선수처럼 해야지 검투사처럼 해선 안된다
검투사는 칼을 잃으면 죽지만
격투기 선수는 항상 주먹을 꽉 쥐기만 하면 된다.

일종의 일기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저술은 당대에는 그 측근들조차 본 적이 없는 것으로서 후대에 와서야 알려졌는데, 그 중 일부는 게르마니아 전선에서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명상록’이라는 제목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필사본들에는 ‘자기 자신에게’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통치의 어려움 속에서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제목은 저술의 의도와 내용을 잘 반영한다.

그래서 고전 연구가들은,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기>에서 전투와 전술의 세세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그와 200여년의 시차를 두고 역시 전장에서 집필한 <명상록>에서 아우렐리우스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자못 흥미롭게 본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에게 자신의 영혼보다 더 조용하고 한적한 은신처는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늘 그런 은신의 기회를 가져 너 자신을 새롭게 하라!”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는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데서 오는 온갖 문제 앞에서 역설적으로 “나 자신이라는 작은 영역으로 은신할” 생각을 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철인왕의 의미와 그 실천이 있다. 왕의 철학자적 자세란 바로 문제의 근본을 파악하는 것이며, 항상 기본 원칙을 성찰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용기 있게 그것에 충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도 잘 드러나 있다. “네 기본 원칙들을 적용할 때는 판크라티온(온 몸으로 싸우는 격투기) 선수처럼 해야지, 검투사처럼 해서는 안 된다. 검투사는 사용하던 칼을 잃으면 죽지만, 판크라티온 선수는 주먹을 항상 갖고 있어 그것을 꽉 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진실과 원칙을 위해 주먹을 꽉 쥔 철학자, 그가 철인왕인 것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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