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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애완식물 기르며 ‘느리게 가는 삶’도 배웠으면

등록 2006-04-30 16:04수정 2006-05-01 17:55

소중애/ 천안 신촌초등학교 교사
소중애/ 천안 신촌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우리 반 아이들 모두는 학교 앞 횡단보도 건너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송곳 하나 꽂을 땅 없는 아파트 살림이니, 식목일 날 나무 심으라는 말을 차마 못했다. 대신 학교에서 애완 식물을 하나씩 길러보자고 했다. 이미 싹이 튼 것이나 모종한 것은 안되고 씨앗으로 심어 싹 틔우고 돌봐 주자니깐 좋단다. 화분이 없으면 헌 그릇에 심어도 좋고 페트병 잘라 그 속에 심어도 좋다고 했다. 그것도 저것도 없는 사람은 꽃씨도 좋고 곡식이나 채소 씨앗도 좋으니 가져오라고 했다. 씨앗 뿌리듯 선택의 폭을 많이 주었지만 맨손으로 온 아이도 있다. 그럴 줄 알고 집에서 안 쓰는 그릇을 가져다주니 우리 반 모두에게는 애완식물이 하나씩 생겼다.

아이들은 씨앗을 심은 날부터 조바심이 대단했다. 빨리 싹 나오라고 철철철 넘치도록 물을 주었다. 말렸더니 교사 몰래 준다. “그러면 씨앗이 썩어서 싹이 나오지 않아요.”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소용없다. 2학년 짜리 농부들이니 탓할 수도 없다.

“물을 많이 주면 애완 식물이 물에 빠져 죽어요.”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가슴에 닿았나보다. 물 주기가 그쳐 씨앗들은 노아의 방주 시절 재난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진이다. 작은 화분을 들고 다니면서 흔들어대니 어디 싹인 들 나오고 뿌리인들 자리를 잡겠는가? “식물도 멀미를 해요. 멀미가 심하면 애완 식물은 죽고 말거예요. 사랑하는 애완식뭃이 나 때문에 죽는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그래서 지진도 멈췄다.

교사가 알려주는대로 계량컵에 눈금을 맞춰 물을 주기로 약속했다. 알맞은 햇볕에 알맞은 물에 주위가 안정되고 아이들의 사랑과 관심이 듬뿍이 쏟아지니 여기서 쏘옥 저기서 쏘옥 싹들이 흙을 비집고 나왔다.

아이들은 등교만 하면 애완식물에게 달려갔다. 애완식물과 대화도 한다. “안녕? 검정 콩아. 많이 자랐구나.” “봉선화야, 언제 꽃 필거야?” 싹이 많이 튼 화분은 콩나물시루 같은데 싹이 안 튼 화분도 5개나 되었다. 남들은 다 파란싹을 가졌는데 흙만 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할까? “왜 안 나오는거야 ? 답답하다.” 다섯명의 아이는 다시 화분을 흔들고 손가락으로 후벼댔다.

아이들이 하교 한 뒤 살펴보니 5개의 화분은 가망이 없다. 살그머니 화분 속에 씨앗을 심어 주었다. 물도 충분히 주었으니 낼모래면 싹이 틀 것이다. “저도 싹 났어요!” 싹이 트면 다섯 아이들은 소리를 빽빽 지르며 껑충껑충 뛸 것이다. 그럼 나는 모른 척 한마디 해 주어야지. “천천히 나오는 싹도 있고 천천히 자라는 싹도 있어요. 잘 보살펴 줘요.”


식물은 느리게 자란다. 거름과 물을 넘치도록 준다고 잘 크는 것도 아니다. 영양과 물과 햇빛이 알맞아야 하며 시간이 필요하다. 식물을 키우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애완식물을 기르면서 느리게 가는 삶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소중애/천안 신촌초등학교 교사 sojoong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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