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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이주노동자 축제에서 웃음으로 만난 '이웃'들

등록 2006-06-11 17:10수정 2006-06-12 16:08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이주노동자축제’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국의 전통음식을 선보이는 ‘요리보고’  마당이 특히 인기를 모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이주노동자축제’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국의 전통음식을 선보이는 ‘요리보고’ 마당이 특히 인기를 모았다.
1318리포트

지난달 28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이주노동자축제가 열렸다. 먼 한국까지 와서 수고해 주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고마움을 전하고 절친한 이웃이 되려는 시도이다. 문화마당 부스 하나하나마다 필리핀, 몽골, 러시아 같은 나라들의 전통 음악이 흘러나왔다. 잔디가 촘촘하게 깔린 88마당에는 ‘요리보고’가 열려 각 나라의 음식이 선을 보였다. 콘서트장에서는 각 나라의 가수들이 열창으로 열기를 돋웠다. 나는 자원봉사자들 틈에 끼어, 베트남 전통 민요에 맞춰 이리저리 춤을 추는 소 인형의 발과 사람들 다리 사이로 큼지막한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녔다. 사람들의 눈길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쇠뿔 끝을 향했지만, 나는 쓰레기를 줍느라 땅바닥에 눈길을 붙여 놓았다. 쓰레기봉투를 휘두르다 눈이 마주친 스리랑카 사람이 “안녕하세요.”하고 활짝 웃는다. 한 중국인은 “수고하세요.” 태국 사람은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건넨다. 사람과 만날 때 먼저 미소로 만나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주노동자’라는 말과 함께 남루한 옷차림의 슬픈 눈을 한 동남아시아인, 그리고 ‘불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전형적인 노동자복을 입고 서투른 한국말, 어색한 영어를 할 것이라 짐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축제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말끔한 옷차림에 유창한 한국말 그리고 영어를 구사했다. 슬픈 눈, 노동자복? 천만에! “안녕하세요.”하는 인사에 활짝 웃는 얼굴, 말쑥한 양복을 입고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온 사람도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단지 축제를 즐기러 온 외국인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은 그다지 수줍어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온 나이지리아 사람. 이름이 뭐냐고, 몇 학년이냐고 물어 왔다. 오히려 내가 더 수줍어했다. 안내 부스 앞에서 꽉 찬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있을 때, 뒤에서 장난스럽게 말을 꺼낸 말레이시아 사람도 있다. “모자 좀 주세요. 하나도 없어요.” 내가 쓰고 있는 자원봉사자용 모자를 보고 한 말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기념으로 나의 모자를 주었다. 말레이시아 사람은 모자를 쓰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걸어갔다.

대대로 단일민족으로 살아 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을 만나는 데 서투르다. 아니, 외국인뿐만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데 서투르다. 수줍음을 타기도 하고, 미리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한다. 독일인이라면 어려워하지만 파키스탄인이라면 은근히 무시하기도 한다. ‘불법 이민자’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다가가는 비결은 간단하다. 먼저 웃어 주는 것. 미소 한 번에 마음이 녹기도 하고 웃음 한 방에 친구가 되기도 한다. 불법이민자이건 아니건, 키르기스스탄의 시골에서 왔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왔건 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을 만났을 때 먼저 나에게 무슨 이익이 될지 계산하고 만나기도 하고, 손해가 된다 싶으면 딱 끊어 버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굳어져만 가는 것 같다. 이주노동자 축제에 뛰어들어 사람을 따스하게 만나고, 굳은 마음을 풀고, 호의의 미소를 짓는 법을 다시 배웠다.

글·사진 최은별/1318리포터, 민족사관고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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