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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야자’ 쉬는시간, 교실은 스튜디오로 변한다.

등록 2006-05-28 15:47수정 2006-05-29 14:16

1318리포트 /

2학년 들어서 만들어진 이과의 유일한 여자반인 우리반은 저마다 개성이 넘치는 친구들이 모였다. ‘야자’ 시간이 되면 우리는 각자 공부할 책을 펼치고 하나둘씩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저녁밥을 먹은 뒤 복도 창문 너머로 감독 선생님들의 시선을 느끼며 우리들의 야자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다들 조용하고 집중하는 듯하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자세가 흐트러지고 잠의 세계로 빠져드는 애들이 생겨난다. 아예 내놓고 자는 애들도 있다. 나와 짝꿍은 잠을 깰 겸 주로 요즘 누가 사귀는지부터 연예인 얘기까지 우르르 쏟아낸다. 종이로 서로 주고 받으며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야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졸던 애들까지 다 일어나서 수다 떨고 화장실도 가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반 애들은 난데없이 사진 콘셉트를 정하기 시작한다. 모두 머리를 묶은 발랄하고 귀여운 포즈로 시작해,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로 찍은 ‘프렌체스카’ 콘셉트, 교실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우르르 달려오는 포즈가 이어진다. 마지막은 이미지 사진처럼 책상에 담요를 덮고 흰색 담요로 뒤를 가린 다음 턱을 괸 포즈가 장식한다. “뭔가 허전한데….” 애들이 이렇게 한 마디씩 하자 휴대폰 플래쉬가 책상에서 얼굴 아래쪽으로 옮겨간다. 불을 끄자 완전 공포 그 자체다. 그렇게 여러 번 바꾸다 결국 처음대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의 주제는 매번 다르다. 오늘은 장풍과 ‘우’가 콘셉트이다. 한쪽에서는 장풍 쏘고 반대편에서는 장풍을 피하기 위해 매트리스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이 돋보기처럼 한 곳으로 모아진다. “아니야, 어색해 좀 더 표정에 힘이 들어가야지 힘줘, 힘!” 그렇게 일시정지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들이 모두 멈췄다.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작품 하나가 탄생한다. 아마도 사진에 소리도 나온다면 진짜 정신이 없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우’ 컨셉이다. “아래서 찍어 그래야 다리가 길어져.” 하나둘씩 제각각 포즈를 잡는다. 정말 리얼하게 한 컷 찰칵!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 반 애들의 사진 기술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옆반 애들도 구경할 정도가 되었다. 20분이지만 이 쉬는 시간은 보고만 있어도 절로 즐거워진다. 아이들끼리 이렇게 잘 노는 반은 우리 반뿐일 거다. 그러다 가끔 즐거운 기분이 야자시간까지 가다가 선생님들한테 걸려서 밖에 나와서 벌을 받지만 그래도 애들은 다들 즐거운 기색이 영력하다.

9시. 야자의 재개를 알리는 종이 다시 친다. 하지만 이제는 졸지 않는다. 사진 놀이를 하며 한 시간은 버틸 힘이 다들 생긴 것이다. 졸음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디선가 보충받은 ‘슈퍼파워’가 넘쳐난다. 놀 땐 확실하게 놀고 그 힘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는 우리반 진짜 진짜 만세다.

글·사진 박소영/1318리포터, 안양 성문고 2학년 soyoung62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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