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논술 [난이도- 고등] /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비타민 ■ 교과서 훑어보기 국제 사회는 국내 사회와는 달리, 통일된 입법 기관, 집행 기관, 사법 기관이 없어서 강력한 집행이나 제재를 할 수 없다. 따라서, 국제 사회의 문제는 조약이나 관습법 등에 의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제 문제의 해결은 힘의 원리에 의하여, 강력한 힘(경제력, 군사력 등)을 가진 국가의 문제는 빨리 해결될 수 있는 반면, 힘이 없는 국가의 문제는 더디게 해결될 수밖에 없다. ―<법과 사회>(교학사) 172쪽 국가·사회를 이끌어 갈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느냐는 당시 최대의 정치적 쟁점이었다. 18세기에는 왕·귀족 대 부르주아 계층이, 19세기에는 부르주아 계층과 산업 노동자들이 대립하였다. 그 과정에서 영국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파괴와 무질서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평등을 실현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며, 선거권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사회>(중앙교육진흥연구소) 196쪽 ■ 교과서에서 논제 찾기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할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지. 많은 이들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기분 나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식으로 분통을 터뜨려. 우리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과 대화한다면, 이런 식으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실의 왜곡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진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길 수 있거든.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에 대해 좀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알게 돼. 과연 역사는 사실의 기록인가, 해석의 결과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사실은 역사의 기본적인 요소야. 사실과 사건이 없다면 역사는 성립할 수 없지. 그리고 특정 사실과 사건은 한번 일어나면 그것으로 일단락이 되고 전혀 바꿀 수가 없어. 이런 관점에서, 역사란 자료나 문헌을 통해 과거의 사실을 일어나는 대로 기술하고 정리하는 것, 즉 사실의 단순한 집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어.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랑케는 “본래 있던 그대로의 역사”를 주창하면서 실증주의 역사학의 새 장을 열었는데, 그의 이 경구는 그 이후 역사가들의 지배적인 좌우명이 되었지. 하지만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면밀히 검토해야 할 전제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어.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거야.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 그런데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이전이나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어. 이것 또한 사실이야. 그렇다면 왜 시저의 도강(渡江)만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선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돼. 역사가의 일은 반박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최대한 모아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객관적 사실을 추려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 내는 거야.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쓰인 역사’, ‘사실과 해석’, ‘과거와 현재’로 표현되는 역사 철학의 두 대립항에서, ‘있는 그대로의 역사’, ‘사실’, 그리고 ‘과거’에 커다란 비중을 둔 이가 랑케라면, ‘쓰인 역사’와 ‘해석’, 그리고 ‘현재’에 훨씬 커다란 비중을 둔 이가 콜링우드야. “역사는 역사가가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을 자신의 마음 속에 재현한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역사 연구의 주요한 방법으로 삼은 그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어. 역사가는 ‘시대의 아들’이고, 역사가 역시 ‘시대적 조건의 산물’임을 감안한다면, 역사가의 해석에는 이미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고정 관념이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추론할 수 있지. 하지만 주관주의적 역사학은 회의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커. 이러한 관점이 극단화되면 5·18 민중항쟁도, 한국전쟁 중 양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노근리 학살 사건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도 ‘없는 것’이 돼. 역사가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야. 주관주의 역사학의 가장 큰 위험성은 ‘역사 왜곡’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점이지. 이런 논리에서라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목적의 정당성을 내세워 일제의 조선 침략을 미화하고 조선인의 수탈이나 희생을 간과하는 일본 우익의 역사 인식을 나무랄 수 없어. 객관적인 역사의 확립을 위해 지금까지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사실을 개척해 낸 것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의 공이었다면, 역사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제거해 버린 것이 그들의 과오였어. 다시 말해, 콜링우드에 의해 우리는 현재의 문제 의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정당성을 배웠고, 역사 서술에서 잃어버린 역사가의 사상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 찾을 수 있었어. 그러나 역사를 만드는 데 역사가의 역할을 너무 강조하여 역사에서 객관성을 제거해 버린 것이 주관주의 역사학의 문제였지.
이 양자의 관계에 대해 영국의 역사학자 카는 이렇게 말했어.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거야. 이처럼 카는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과 중심을 현재에 두는 역사관의 중간 입장에 서 있어. 즉, 역사가와 사실은 평등 관계, 다시 말해 주고받기(give and take)의 관계에 있다는 거야. 현재의 역사는 부단히 과거의 사실을 새로이 해석하고, 현재의 시대적 요구나 문제를 바탕에 두고 과거와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한다는 말이지. 역사는 과거 사실의 지식 쌓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과거의 역사를 다시 반추하는 거지. 그럴 때 역사는 역사의 왜곡을 벗어나, 역사의 진실, 실체적인 사실에 한 걸음씩 나아가게 되는 거야.
박용성 <교과서와 함께 구술 논술 뛰어넘기> 저자, 여수여고 교사
위 논제와 관련된 기출 문제(1998학년도 고려대 정시 논술 문제)는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기출 문제에 대한 박용성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는 전라남도교육정보원(www.jnei.or.kr)에 들어가 ‘인터넷교육방송→고교논술→실전논술’순으로 검색하면 무료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비타민 ■ 교과서 훑어보기 국제 사회는 국내 사회와는 달리, 통일된 입법 기관, 집행 기관, 사법 기관이 없어서 강력한 집행이나 제재를 할 수 없다. 따라서, 국제 사회의 문제는 조약이나 관습법 등에 의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제 문제의 해결은 힘의 원리에 의하여, 강력한 힘(경제력, 군사력 등)을 가진 국가의 문제는 빨리 해결될 수 있는 반면, 힘이 없는 국가의 문제는 더디게 해결될 수밖에 없다. ―<법과 사회>(교학사) 172쪽 국가·사회를 이끌어 갈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느냐는 당시 최대의 정치적 쟁점이었다. 18세기에는 왕·귀족 대 부르주아 계층이, 19세기에는 부르주아 계층과 산업 노동자들이 대립하였다. 그 과정에서 영국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파괴와 무질서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평등을 실현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며, 선거권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사회>(중앙교육진흥연구소) 196쪽 ■ 교과서에서 논제 찾기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할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지. 많은 이들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기분 나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식으로 분통을 터뜨려. 우리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과 대화한다면, 이런 식으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실의 왜곡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진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길 수 있거든.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에 대해 좀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알게 돼. 과연 역사는 사실의 기록인가, 해석의 결과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사실은 역사의 기본적인 요소야. 사실과 사건이 없다면 역사는 성립할 수 없지. 그리고 특정 사실과 사건은 한번 일어나면 그것으로 일단락이 되고 전혀 바꿀 수가 없어. 이런 관점에서, 역사란 자료나 문헌을 통해 과거의 사실을 일어나는 대로 기술하고 정리하는 것, 즉 사실의 단순한 집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어.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랑케는 “본래 있던 그대로의 역사”를 주창하면서 실증주의 역사학의 새 장을 열었는데, 그의 이 경구는 그 이후 역사가들의 지배적인 좌우명이 되었지. 하지만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면밀히 검토해야 할 전제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어.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거야.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 그런데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이전이나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어. 이것 또한 사실이야. 그렇다면 왜 시저의 도강(渡江)만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선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돼. 역사가의 일은 반박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최대한 모아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객관적 사실을 추려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 내는 거야.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쓰인 역사’, ‘사실과 해석’, ‘과거와 현재’로 표현되는 역사 철학의 두 대립항에서, ‘있는 그대로의 역사’, ‘사실’, 그리고 ‘과거’에 커다란 비중을 둔 이가 랑케라면, ‘쓰인 역사’와 ‘해석’, 그리고 ‘현재’에 훨씬 커다란 비중을 둔 이가 콜링우드야. “역사는 역사가가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을 자신의 마음 속에 재현한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역사 연구의 주요한 방법으로 삼은 그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어. 역사가는 ‘시대의 아들’이고, 역사가 역시 ‘시대적 조건의 산물’임을 감안한다면, 역사가의 해석에는 이미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고정 관념이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추론할 수 있지. 하지만 주관주의적 역사학은 회의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커. 이러한 관점이 극단화되면 5·18 민중항쟁도, 한국전쟁 중 양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노근리 학살 사건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도 ‘없는 것’이 돼. 역사가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야. 주관주의 역사학의 가장 큰 위험성은 ‘역사 왜곡’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점이지. 이런 논리에서라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목적의 정당성을 내세워 일제의 조선 침략을 미화하고 조선인의 수탈이나 희생을 간과하는 일본 우익의 역사 인식을 나무랄 수 없어. 객관적인 역사의 확립을 위해 지금까지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사실을 개척해 낸 것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의 공이었다면, 역사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제거해 버린 것이 그들의 과오였어. 다시 말해, 콜링우드에 의해 우리는 현재의 문제 의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정당성을 배웠고, 역사 서술에서 잃어버린 역사가의 사상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 찾을 수 있었어. 그러나 역사를 만드는 데 역사가의 역할을 너무 강조하여 역사에서 객관성을 제거해 버린 것이 주관주의 역사학의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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